[야고부] 이런 전쟁

입력 2017-10-12 00:05:00

중국인들이 부끄럽게 여겨 좀체 들추지 않는 역사가 있다. 북송 흠종 2년(1127년)에 일어난 '정강(靖康)의 변'이다.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의 공격에 수도 변경(카이펑)이 무너지고 북송이 멸망한 이 사변은 숱한 왕조가 서고 사라진 중국사에서 유별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송 왕실의 참극은 중국 입장에서 씻기 힘든 치욕의 역사다.

송(宋)은 조광윤이 오대십국 시대를 종결하고 세운 나라다. 그러나 167년 후 송(북송)은 멸망한다. 당시 왕실 종친과 고관대작 등 3천 명이 포로가 됐는데 금의 도읍인 상경회령부(하얼빈)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당했다. 특히 휘종'흠종 부자는 수십 년을 붙잡혀 있다가 오국성에서 죽었다. 인조의 '삼전도 치욕'은 저리가라다. 여태 오국성 위치는 물론 두 황제의 무덤자리조차 확인하지 못했으니 중국인들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장택단이 그린 '청명상하도' (淸明上河圖)에서 보듯 변경(허난성)은 번화했고 물산은 넘쳐났다. 송의 경제력은 요'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금석서화에 빠진 휘종은 국정을 게을리해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갔다. 관리들은 무능했고 군대는 부패해 송의 국체와 외교는 돈으로 겨우 지탱할 지경이었다는 점에서 북송 멸망사는 큰 교훈을 준다.

북한 도발이 주춤한 사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반도 정세 발언은 요즘도 쉴 틈이 없다. 전략폭격기가 연거푸 한반도 상공에 출몰하는가 하면 핵추진 잠수함 투싼(SSN 770)이 진해에 입항했다는 보도다. 다음 주 핵추진 잠수함 미시건함과 로널드 레이건 항공모함도 연합훈련을 위해 우리 해역에 진입한다. 이런 움직임은 트럼프가 "25년간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단 하나의 수단만 효과가 있다"고 지목한 그 옵션이 무엇인지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그제 국제무기전시회 기조연설에서 6'25를 다룬 시어도어 페렌바크의 책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을 언급한 것도 눈길을 끈다. 1963년 출판된 이 책은 한국전 참전 장교의 전장 기록으로 미군 지휘관에게 필독서로 꼽힌다. 이런 책을 빌려 준비되지 않은 전쟁과 잘못된 상황 판단을 경계하는 매티스 장관의 의도가 읽힌다.

60여 년 전 그때와 지금 상황이 같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분쟁은 늘 허술한 틈을 노린다는 점에서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 북'미 간 공방에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된 우리가 곱씹어볼 것이 한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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