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절차' 없는 투기과열지구

입력 2017-09-29 00:05:00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 제1항은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민주주의 실현과 완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는 '절차'가 있다. 흔히 절차적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민주주의 국가는 다양한 의견들을 존중하기 때문에 이러한 의견들을 조정해 합의에 이르도록 할 수 있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국토교통부가 이달 5일 대구 수성구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는 과정은 절차적 민주주의에 어긋난다는 논란을 빚고 있다. 주택법 제63조 5항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장관이 투기과열지구를 지정하거나 해제할 경우에는 시'도지사의 의견을 들어야 하며, 시'도지사가 투기과열지구를 지정하거나 해제할 경우에는 국토교통부 장관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

이에 국토부는 이달 1일 대구시에 "수성구 투기과열지구 지정에 대한 의견을 회신해 달라"고 통보했고 대구시는 주택정책자문단 등 전문가 의견을 거쳐 4일 오후 5시 30분쯤 '투기과열지구 지정에 관한 의견 제출' 문서를 발송했다. 발송 문서에는 "수성구 일부 지역 과열 현상으로 수성구 전체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는 것보다는 지역 상황을 고려해 한 단계 아래의 조정대상지역으로 완화하고 모니터링을 통해 투기과열지구 지정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의견을 담았다.

그러나 국토부는 이 같은 대구시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고, 대구시 회신 이전에 이미 투기과열지구 지정을 결정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국토부가 수성구 투기과열지구 지정에 대한 보도자료를 배포한 시각은 4일 오후 4시로, 대구시 문서 발송 시각보다 1시간 30여 분이나 앞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대구시 의견을 듣는 과정은 정상적으로 진행했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절차' 없는 투기과열지구 지정 논란은 서울, 경기 과천, 세종 등 전국 27곳이 투기과열지구에 오른 지난 8'2 대책 때도 불거졌다. 국토부가 지난달 24일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실에 제출한 '최근 5년간 주거정책심의위원회(주정심) 시행 내역' 자료에 따르면 8'2 대책 당시 투기과열지구 지정을 심의하는 주정심 위원들은 회의 한 번 없이 서면 심사로 급히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고, 주정심 회의 안건은 지난 5년간 단 한 번도 부결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주정심 총원 24명 중 당연직 공무원(13명)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나머지 11명은 대학교수나 연구원장 등 위촉직으로 구성해 애당초 안건 부결이 어려운 구조다.

정부의 투기과열지구 지정은 부동산 투기 세력을 뿌리뽑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투기 세력 차단에 대한 정부 의지와 정책 결정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문제는 절차다. 대구시는 앞서 국토부 의견 제출 요청 당시 전문가 의견 검토 단계를 진행했고, 전문가들은 현재 수성구 과열 양상이 범어동 등 일부 지역에 한정돼 투기과열지구보다 한 단계 아래의 조정대상지역으로 완화해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또 비수도권 투기과열지구 1순위로 꼽혀 왔던 부산은 지난 8'2 대책 당시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고, 지난 1년간 집값 상승률이 부산보다 훨씬 낮은 수성구는 조정대상지역도 거치지 않고 바로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을 냈다.

대한민국은 정당한 절차를 가장 중요시하는 민주주의 국가이며 민주주의 국가는 토론, 관용, 다수결 원리, 비판, 타협 등 다양한 절차적 규범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번 수성구 투기과열지구 지정은 정당한 절차적 규범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일방적 통보에 불과했다. 중앙정부가 지방과 협의하고 토론하며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 사실상 전무했다. 지방분권을 내건 문재인 정부 역시 중앙 관료의 지방 무시를 여전히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수성구 투기과열지구 지정은 타당성 여부를 떠나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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