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는 전통·원형 지키는 개념, 그래서 청송이 흥미롭다"
이탈리아가 품은 보석 중 하나가 '슬로시티'(cittaslow)다. 1999년 10월 이탈리아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i)의 파올로 사투르니니(Paolo Saturnini) 전 시장을 중심으로 패스트푸드의 반대 개념인 슬로푸드 운동이 시작됐다. 그 슬로푸드 운동에서 슬로시티라는 개념이 파생돼 더욱 발전했고, 오르비에토(Orvieto)에 본부가 설립되면서 가장 안정적인 국제기관으로 성장하고 있다. 슬로시티는 '공해 없는 자연에서 전통문화와 자연을 보호하면서 자유로운 옛 농경시대로 돌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고 느림과 여유를 찾아 삶의 질을 높이자는 국제운동이다.
현재 30개국 238개 도시가 슬로시티로 인증돼 있다. 청송군은 지난 2011년 6월 25일 국내 9번째, 세계 143번째 슬로시티로 인증받은 후 올해 3월 재인증 도시가 됐다. 경북은 청송'상주'영양이 슬로시티에 가입돼 있다.
◆중세도시 오르비에토
이탈리아 오르비에토는 중세도시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로마에서 북서쪽으로 96㎞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오르비에토는 대구에서 안동 정도의 위치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안동의 하회마을이 조선시대 옛 고을을 연상케 하는 것처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오르비에토는 해발 195m 바위산 위에 도시가 형성됐다. 중세시대 이탈리아는 외세의 침략을 피해 주로 산 정상에 마을이 형성됐다. 그만큼 교통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고 자연스레 자급자족이 이뤄지는 봉건사회가 형성됐다.
그런데 오르비에토에는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이 있다. 마을에 올라가기 전 마을 전경을 올려다보면 다양한 시대의 거주지 유적을 확인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부터 만들어진 동굴이 도시의 가장 아랫 부분에 그대로 매장돼 있고, 그 위에 중세시대 형성된 건물 등이 올려져 있다. '석조문화'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겹겹이 건물을 올려도 고대 유적들이 파손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중세시대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오르비에토에는 대부분 차량이 들어가지 못한다. 이유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폭이 마차가 오갈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골목이 좁은 덕에 이로운 점도 있었다.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을 대부분 건물이 막아주기 때문에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그늘이 많았다.
오르비에토의 또 하나 볼거리는 바로 두오모(Duomo'대성당)다. 이 대성당은 1290년 착공한 후 300년에 걸쳐 공사가 계속돼 1600년쯤 완공됐다. 이탈리아 고딕 건축 양식을 그대로 갖추고 있으며 전면을 장식하는 모자이크가 일품이다.
이 대성당이 지어지게 된 계기가 더 재밌다. 바로 '볼세냐의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1263년 보헤미아(체코)의 프라하에서 독일인 베드로 신부가 볼세냐의 산크리스티나 성당에서 미사를 진행했다. 이 신부가 성체성사 미사 중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라는 예수의 한마디를 말하는 순간 빵에서 피가 흘러나와 성체포에 흘러 25개의 점을 남겼다고 한다. 당시 오르비에토에 머물고 있던 우르노바 4세 교황에게 이를 보고했고 교황의 지시로 이 성당을 짓게 됐다. 이 성당에는 당시 성체포가 그대로 보관돼 있다.
◆슬로시티의 슬로푸드
오르비에토는 고산지대지만 비옥한 토양을 갖고 있기 때문에 농산물을 주로 생산한다. 특히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백포도주는 와인의 나라 이탈리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뛰어나다. 마을 곳곳의 식당에서는 지역의 먹을거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 나는 신선한 채소 등을 이용해 요리했고 직접 소시지와 베이컨 등을 만들어 손님 대접을 했다.
이탈리아 음식의 기본은 스파게티다. 전식과 후식의 종류나 개수가 다를 수 있지만 우리의 밥처럼 스파게티는 꼭 나온다. 오르비에토의 한 식당에서 식사했는데 총 네 가지 음식이 나왔다. 닭요리와 스파게티, 가지'호박 요리, 베이컨 요리였는데 한가지 음식이 나올 때마다 주인은 그 음식에 대해 설명했다. 예를 들면 닭은 어디에서 온 것이고, 그 위에 올린 올리브는 언제 수확된 것인지, 베이컨은 얼마나 숙성됐고, 가지'호박이 요즘 제철이라는 등 맛이나 음식 조리보다 음식 재료에 대한 설명과 자부심이 강했다. 음식을 먹는 내내 그들의 음식문화와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다. 허겁지겁 배만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농부가 땀을 흘리고 수확한 농산물에 요리사의 정성이 더해져 완성된 '슬로푸드'라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건조하고 높은 자외선 지수 때문에 병충해가 없어 농산물에 농약을 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나무에 과일이 달리고 나서 수확까지 별다른 조치가 없다. 처음 이탈리아 과일들을 접하면 상처가 나 있고 모양이 울퉁불퉁한 게 볼품없어 보인다. 대부분 우리나라에서는 판매할 수 없을 정도로 모양이 좋지 않다.
그러나 사과와 청포도 등을 사 맛을 보니 모양을 타박한 기자가 부끄러울 정도로 달고 신선했다. 한 과일상에 들러 과일의 모양에 대해 물어보니 주인은 "과일 크기는 한 사람이 먹을 만큼 키우면 되고 모양이 좋지 않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눈이 아닌 입으로 먹는 것이 과일이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올리베티 국제슬로시티 사무총장
오르비에토에는 국제슬로시티 본부가 있다. 국제기관의 본부라고 해서 대형 건물을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오래된 중세건물 1층 한편에 본부 사무실이 있는데 이마저 최근까지 내부공사 탓에 인근 시청 2층을 빌려 사용하고 있다. 시청 셋방살이를 하는 국제슬로시티 피에르 조르지오 올리베티(Pier Giorgio Oliveti) 사무총장을 만나 슬로시티 정신과 방향성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올리베티 사무총장은 "슬로시티가 옛날 혹은 멈춤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데 전통을 지키고 보호하자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가 대형화되고 빠르기만 선호한다면 전통과 원형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에서 최근까지 논란이 된 '살충제 계란'이 한 예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살충제 계란'에 대해 언론을 통해 접했다"며 "양이 중요하고 빨리 성과를 내 돈을 벌려고 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장인정신이 없다"고 했다.
올리베티 총장은 '태안 유조선 충돌'도 같은 맥락의 예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부가 돈 때문에 질서를 무시하고 빠르게 움직이려다 사고가 났고 그 사고 탓에 해양 생태계는 물론 어부와 낚시꾼, 인근 주민들까지 모두가 피해자가 됐다"며 "지금 많이 회복된 것 같은데 재발하지 않게 공동체 의식을 갖고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슬로시티 가입국이 선진국 중심이라는 지적에 대해서 그는 "슬로시티는 인문 중심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당장 삶이 어려운 곳은 사회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슬로시티 정신에 대해 이해력이 낮다"며 "일부 국가는 수차례 설명을 하고 가입 의사를 타진했지만 결국 금전적인 지원 등을 요구하기만 했다"고 했다.
끝으로 올리베티 총장은 최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 등으로 발전하는 청송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청송이란 한 도시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며 "슬로시티와 더불어 국제적 브랜드를 통해 관광적으로 많은 발전을 기대하고 있으며 인문학 차원의 정신적인 사고도 잘 정립해 세계적으로 모범이 될 수 있는 도시로 성장하길 기원한다"고 했다.
자문 대한관광경영학회 김영규'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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