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 숨 쉬는 대구 중구 도심 재창조] <하>미래형 도시재생으로

입력 2017-09-27 00:05:03

구도심 싹 걷어낸다? 살짝 손봐 숨은 매력 발산!

북성로는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구도심 중 하나로 특유의 매력이 가득 담겨있다. 매일신문 DB
북성로는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구도심 중 하나로 특유의 매력이 가득 담겨있다. 매일신문 DB
중구청은 북성로의 명물 연탄불고기 거리를 특화골목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매일신문 DB
중구청은 북성로의 명물 연탄불고기 거리를 특화골목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매일신문 DB
달성토성 일대 도시재생은 동물원 이전 문제로 좌절돼왔다. 달성토성 인근 벽화골목의 모습. 매일신문 DB
달성토성 일대 도시재생은 동물원 이전 문제로 좌절돼왔다. 달성토성 인근 벽화골목의 모습. 매일신문 DB

1970년대 재개발지구 빈민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담론으로 남아 있다. 우리 사회가 긴 시간 '도시재생'을 '재개발'과 혼동했으며, 낡고 지저분한 건물을 밀어버리고 번쩍이는 새 건물을 짓는 게 도시를 재생하는 행위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는 일시적으로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효과를 거뒀을 뿐 지역 원주민을 쫓아내고 공동체를 해체해 구도심 자체를 없애버렸다. 특색 있던 골목길은 똑같이 생긴 성냥갑 아파트로 채워지고 말았다.

대구 중구는 이런 고전적 도시재생 패러다임과의 결별을 꿈꾼다. 즉 원래의 도심을 제거하고 새 도시로 대체하는 '골수 이식형 도시재생'에서 벗어나 구도심 특유의 매력을 한껏 발산할 수 있는 '되살리는 도시재생'으로의 길을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전자가 지역 원주민을 소외시키고 구도심을 없앤다면 후자는 원주민이 주체가 돼 구도심을 살리고 도시재생을 이끌어 나간다는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구도심의 매력 속으로

중구청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진행될 '역사'문화가 살아 숨 쉬는 테마형 도시재생' 사업 시행을 최근 확정했다. 국비 등 총 4천억원의 예산이 들어갈 이 사업은 중구와 서구 구도심 일대(교동시장~서부시장, 대구역~반월당네거리)에서 추진된다. ▷북성로 ▷교동시장'번개시장 ▷달성토성 ▷동산동'약령시의 네 곳으로 나뉜 사업구역들은 저마다 특색을 최대한 살려 문자 그대로 '재생'될 예정이다.

먼저 북성로 일대는 옛 대구읍성의 북쪽 성곽길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 야마구찌 도기점'모나미다방'자유당 대구지부 등 근대 건축물을 보존'복원하고 '100년사의 길'을 조성해 또 하나의 '역사 테마파크'로 조성한다. 또 공구산업이 밀집한 '북성로 공구골목'을 특화거리로 조성하고, 지역 명물인 '연탄불고기 거리'를 통해 골목상권을 활성화하는 등 기존 북성로의 매력을 더욱 확대'강화한다는 복안이다.

중구청은 이렇게 강화된 구도심 북성로의 매력 속에 '문화예술'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도 녹여내 새로운 중구의 '핫 플레이스'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수창동에 신설된 대구예술연구소와의 연계를 통해 청년들의 문화예술 창작공간을 조성하고, 방치된 경부선 남측 미군부대 창고 건물을 예술인과 젊은 작가들의 스튜디오'전시실 등으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계획대로 된다면 북성로는 인근 대구콘서트하우스 등과 연계된 하나의 거대한 문화예술 벨트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원 이전으로 날개 단 달성토성

달구벌의 본류이자 신라 최초 토성인 달성토성 복원사업을 비롯한 달성동 일대 도시재생 사업들은 동물원 이전 문제로 번번이 좌절돼 왔다. 시는 2010년부터 총 172억원을 들여 달성토성을 복원하고 야외 발굴 체험장, 영남문화박물관 조성 등 사업을 추진했지만 동물원 이전이 늦어지면서 국비 지원금 92억여원을 반납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지난 5월 대구시가 2022년까지 달성공원 동물원을 수성구 삼덕동 대구대공원 부지에 이전하기로 결정하면서 활로가 트였다. 중구청은 동물원 이전과 함께 2025년까지 달성토성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달성둘레길, 역사문화마당, 문화체험관, 달성으로 가는 길 등 일명 '2천년 역사 창의 체험공간'과 미싱골목, 인동촌 맛거리 등 특화골목을 함께 조성해 적극적으로 도시재생에 나설 계획이다. 경북대 이정호 교수(건축학과)는 최근 중구청이 개최한 도시재생토론회에서 "달성토성을 서울의 광화문처럼 광장으로 조성해 발굴된 유적을 지하에 그대로 재현하는 등 대구의 과거'현재'미래를 표현해보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패러다임 깨는 '미래형 도시재생'의 길로

중구 교동시장은 과거 미군부대에서 빼내온 미제 군복, 수입 과자 등 PX 제품을 살 수 있어 '양키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떨쳤던 곳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인구가 줄면서 자연스럽게 쇠락의 길을 걸었다.

낙후된 교동을 되살려야겠다는 생각은 관(官)이 아니라 민(民)에서 먼저 나왔다. 지난 3월 교동시장 상인들과 문화예술인'관련 전문가 등이 손을 잡고 '교동 활성화 포럼'을 개최해 자발적으로 '도시재생 공부'에 나선 것. 이에 중구청과 중구 도시재생센터는 매달 1차례 열리는 포럼에서 주민과 상인들이 도시재생에 대해 공부하고 아이디어를 내면 이를 실제 교동시장 활성화 계획에 반영하고 있다. 중구청 관계자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26일 현재 교동시장 일대의 시가지 재생사업이 가장 많은 진척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정부가 향후 5년간 총 50조원 규모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중구 교동 사례는 새 정부가 추구하는 모델이자 대구가 앞으로 펼쳐나갈 '주민 주도형 도시재생 사업'의 기본 틀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즉 관이 주도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주민은 단순히 참여하는 데 그치던 기존 도시재생을 벗어나 주민들이 직접 주도하고 유지해나가는 '미래형 도시재생'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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