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문은 생각 밖의 도시였다. 연암 박지원은 국경의 작은 마을이 그 정도일 거라곤 상상할 수 없었다. 사실 별 기대도 하지 않았다. 황제가 사는 곳이라면 모를까 어쨌든 그들은 오랑캐였다. 조선의 선비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중원을 차지하고 있다 해도 청이 명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연암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군사력을 빼고 나면 청나라가 조선보다 그리 대단할 게 없었다. 다만 대륙에 있으니 새로운 문물을 접할 수 있다는 정도, 연암이 기대한 건 그게 다였다. 그래서 늘 북경에는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마흔 중반의 나이에도 지적 호기심이 가득했던 터라 마침 연행사(燕行使)로 가는 삼종형(三從兄)을 따라 길을 나섰다. 도성을 떠난 지 한 달 만에 압록강을 건넜고 다시 나흘을 더 걸어 청나라의 국경, 책문에 도착했다. 그런데 북경 어디쯤은 가야 있을 법해 보이는 광경을 거기서 곧장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등마루가 하늘 높이 솟은 집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반듯하게 닦인 길 위로 마차와 수레가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선에서는 보기 힘든, 그 귀하다는 벽돌로 쌓아올린 담장이 줄지어 있었다. 허허벌판을 지나 마주한 국경의 관문이었다. 당연히 허름할 거라 예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건 반전이었다. 연암은 단지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청나라에 대해 가졌던 자신의 생각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책 열하일기에 그 놀라운 광경들을 소개하며 '그 제도가 촌티가 나지 않음을 볼 수 있었다'라는 소감을 적었다. 지금으로 치면 책문은 청을 소개하는 새로운 이미지, 즉 연암이 청에 대해 지니고 있었던 선입견을 단숨에 뒤집어 버릴 만큼 강렬한 '인트로 이미지'였던 셈이다.
청은 짐작처럼 뻔한 나라가 아니었다. 연암이 책문을 통해 본 청나라는 생각 밖의 놀라운 나라였다.
2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젠 국경까지 가지 않아도 거의 모든 나라, 모든 도시의 이미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이미지나 콘텐츠 간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보이는 사진 한 장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도시를 보여주는 모든 콘텐츠는 뭐든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대구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게 포스터든 현수막이든 하나같이 촌티가 난다. 홈페이지는 권위적이고 불친절하며 홍보 영상은 진부하기 짝이 없고 책자는 250만 명이 사는 광역시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렇게 뻔하면 곤란하다. 이방인 연암을 놀라게 했던 그런 생각 밖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도시를 바라보는 여행자의 시선과 태도가 한 컷의 이미지로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