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달렸다, 단 4대의 차량을 만났다
오전엔 설산 코스
오후엔 초원 달려
밤하늘 별 환상적
전화는 안 터지고
냄새나는 화장실
잠자리 불편해도
한국 번호판 달고
달리는 첫 자동차
정말 기분 좋은 일
러시아에서 육로로 자동차를 타고 국경을 건넜습니다. 꽤 엄격한 짐 검사를 받고 출국한 후, 몽골 입국심사 후 또 통관 검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눈에 가족 여행자임을 알아본 세관원들은 한국 여행자 차량으로는 처음이라는 인사를 하며, 다른 입국자보다 훨씬 관대하고 신속하게 국경을 통과시켜 주었습니다. 우리 시골 지방도로 수준보다도 못한 시설의 고속도로를 달려 다르한(Darkhan)을 지나 곧장 수도 울란바토르(Ula anbaatar)로 향했습니다.
◆몽골인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홉스쿨 호수
내게 몽골의 가장 매력은 역시 드넓은 초원입니다. 그리고 그 초원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매력은 병역 제도입니다. 18~25세까지의 남자는 1년간 군 복무를 해야 하나 한화 70만원을 병역세로 내면 병역이 면제된다고 합니다. 고위층과 거리가 먼 탓에 나는 병장 제대했고, 큰아들도 현역 복무했습니다. 둘째도 현역 제대했습니다. 지금 같이 다니는 막내는 여행 후 입대해야 할 형편입니다. 맨날 세 자녀 혜택 어쩌고 하는데 아무리 돌아보아도 혜택받은 게 없습니다. 사내 셋이면 하나쯤 면제해 주는 게 진정한 혜택이 아닐까요.
길에서 벗어나도 그게 또 다른 길이 되는 초원을 계속 서쪽으로 나아가 내륙의 므른(Meron)에 닿았습니다. 어버이날이라 안부 전화라도 올리려 해도 와이파이는커녕, 네트워크도 잡히지 않아 유심카드가 쓸모없는 답답한 시골 동네입니다. 이튿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므론에서 100여㎞ 북쪽에 있는, 몽골 최고의 국립공원이며, 300만 몽골 국민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한다는 홉스쿨 호수로 향했습니다. 피서철에는 그렇게 붐빈다고 하는데 상가는 폐점 상태이며 숙소도 모두 철수하고 없어 머물 곳이 없습니다. 북쪽으로 바이칼 호수와 이어져 있다는 홉스쿨 호수는 위도가 한참 낮은 지역임에도 고도가 높은 탓일까 아직 두꺼운 얼음과 눈에 뒤덮여 있습니다.
◆몽골다운 몽골을 달리다
홉스쿨 호수를 지난 후 드디어 본격적으로 몽골다운 몽골을 달리기 시작합니다. 몽골에서는 '대통령 골프'처럼 '대통령 운전'이 가능합니다. 마주 오는 차가 거의 없고 뒤따라 오는 차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차를 추월하는 차도 있을 리 만무합니다. 몽골의 들판에서는 차를 보면 반가울 지경입니다. 사람을 보기도 힘이 듭니다. 소, 말, 염소나 양 등을 보는 게 몇십 배, 몇백 배는 쉬웠습니다. 서쪽 고원지대로 올라갈수록 눈은 많아지고 기온은 내려갑니다. 서울은 30℃를 웃돈다는데 이곳의 아침 기온은 영하를 기록합니다. 몽골의 평균 해발 고도는 1,600m가 넘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에 있는 몽골에서도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나그네도 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눈 덮인 산길이지만 해빙이 시작되고 있으며 눈 아래 바닥은 진흙탕입니다. 몇 번이나 미끄러지며 차가 혼자 제자리에서 뱅뱅 돌아 등짝이 흥건히 젖기도 했으며, 눈앞에서 낙석이 떨어져 급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맘을 졸이며 어렵사리 기나긴 오르막길을 올라 고갯마루에 다다르면 또 다른 오르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월 중순에 출발하여 시베리아를 거쳐 몽골에 오면 푸른 초원과 사막길만 달리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그만큼 준비를 소홀히 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니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생고생'으로. 결국 눈 때문에 포기하는 노튼 로드….
다음 날도 눈길에 고군분투하며 3시간 만에 30㎞를 나아가니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솔롱고에서 러시아를 거쳐 왔다고 하니 대단하다며 환호합니다. 북쪽 도로를 지나 다시 러시아로 갈 예정이라고 하니 모두들 미친놈 취급을 합니다. 누군가 전화를 바꾸어 줍니다. 서툴지만 우리말로 2주일 정도 마을에서 쉬면 길이 뚫릴 거라고 합니다. 남은 540㎞의 눈길을 헤치고 나갈 자신도 없습니다. 남쪽으로 진로를 바꾸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자리
오전엔 눈 덮인 산악 코스였는데 오후엔 진흙탕과 개울, 푸르른 초원 코스입니다. 몽골 초원 주행을 꿈꾸는 많은 분들은 꿈과 현실의 괴리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꼭 아셔야 합니다. 이날도 하루 종일 단 4대의 차량만이 손 흔들며, 경적을 울리며 지나쳤습니다. 시베리아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360도 파노라마 지평선에 탄성을 질렀지만 몽골에서는 끝없는 설산, 호수에 비친 석양, 온갖 동물들로 끊임없이 멋지다, 환상적이다, 끝내준다를 연호하며 주행을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두려움이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전화도 안 터지고, 말도 안 통하고, 말이 통한다 하더라도 시야 안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곳에서 차가 고장이라도 난다면, 눈길에 사고라도 난다면, 비상 연료까지 고갈되어 버린다면…. 두려워도 두렵다고 표현할 수도 없고, 걱정되어도 겉으로 함부로 내색을 할 수도 없는 게 아버지의 자리라는 걸 또 한 번 확인했습니다.
◆없는 것이 너무 많은, 그래서 더 멋진 몽골
그 유명한 몽골의 50차로 비포장 고속도로입니다. 아우토반처럼 속도제한이 없습니다. 속도위반 카메라도, 경찰 순찰차도 없습니다. 톨케이트가 없으니 통행료도 무료입니다. 중앙분리대나 차선도 없습니다. 휴게소가 없으니 핫도그나 커피도 없습니다.
며칠간 자갈길, 모랫길, 눈길, 진흙길, 얼음길, 초원길, 개울길…. 종합 도로 세트를 달려보았습니다. 아스팔트 포장길 외에는 대부분의 도로를 다 달려 보았습니다. 새 타이어가 한순간에 너덜너덜해지는 곳이 몽골입니다. 햇볕이 쨍쨍하더니 순식간에 먹구름에 뒤덮이고 뇌우가 몰려오는 곳도 몽골입니다. 그런 길을 고생스레 왜 가느냐고 반문하는 분은 평생 동안 이런 길을 달리는 즐거움을 경험해 볼 수 없겠지요. 어떤 이에게는 고생인데 다른 어떤 이에게는 즐거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행에는 이런 양면성이 있습니다. 힘들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여행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많은 위안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몽골을 달렸습니다.
몽골에는 없는 것이 많습니다. 도시를 벗어나면 인터넷이 없고, 쾌적한 화장실이 없고, 삼각김밥이나 물휴지, 컵라면을 파는 편의점도 없습니다. 시골 호텔의 세면장에 거울이 없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옷걸이나 수건걸이조차 없는 곳도 많고, 방문에 잠금장치가 제대로 갖춰진 곳도 드문 실정입니다. 샤워기가 온전히 작동되는 곳도 드물었고, 변기 커버나 화장지도 없는 곳이 더 많습니다. 청결과도 거리가 멀고, 깨끗한 침구나 편안한 잠자리도 먼 세상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콘크리트 문화에 식상하고, 잠시도 쉴 틈 없이 업무에 시달리고, 성냥갑 같은 고층 아파트에 질리고, 쉼 없이 울려대는 휴대폰에 질리고, 출퇴근 러시아워의 혼잡함을 벗어나 보고 싶을 때, 내 동공과 시선과 기억 속에 끝없는 지평선을 담아보고 싶을 때는 한 번쯤 모든 것을 내려두고 몽골의 초원으로 와 보시기 바랍니다.
2주일 동안 약 4,000㎞의 거리를 달려 몽골을 벗어나는 출국장에서 통관을 담당하는 세관원이 "11년간 이 자리에서 근무했는데 한국 번호판을 달고 여행하는 자동차는 처음 본다"고 합니다. 뭐든지 처음, 최초라는 말을 듣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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