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도올 김용옥 대구를 만나다

입력 2017-09-16 00:05:05

고려대 의학과 졸업. 의학박사. 하버드의대 정신과 펠로우, 성동병원 진료과장
고려대 의학과 졸업. 의학박사. 하버드의대 정신과 펠로우, 성동병원 진료과장

지난 8월 16일 도올 김용옥 선생이 생애 최초로 대구시민을 상대로 강연을 펼쳤다. 2017 DAC 인문학극장 행사의 연자로 초청받아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대구, 동아시아 평화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열변을 토했다.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30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고 했다. 대구MBC는 강연 현장을 촬영해서 TV특집방송으로 내보냈다. 대구MBC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시보기도 가능하다.

도올 선생의 강연을 더 듣고 싶다면 인터넷 도올서원 후즈닷컴을 활용하면 된다. 도올의 서양철학사 강좌 등 후즈닷컴에서만 독점적으로 제공되는 여러 강좌를 들을 수 있고, 고전의 향연 30강 등 회원 가입만 하면 무료로 제공되는 동영상 강좌도 있다.

나와 도올 선생과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 의대 해부학 실습에 지쳐 있던 1988년 5월 초였다. 통나무출판사에서 발간한 '백두산 이야기'라는 그림책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신화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특강을 처음으로 접했다. 지적 거장과의 첫 만남은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무병을 앓고 있던 이에게 행해진 내림굿과 같았다. 심층심리학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고, 훗날 정신의학을 전공과목으로 선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고려대, 타이완대, 도쿄대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버드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표적인 도서관이 와이드너 도서관이다. 도올 선생은 여기에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또 하나의 책을 추가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1986년 발간된 '중고생을 위한 김용옥 선생의 철학강의'에 나오는 내용이다. 나에게는 전문의 과정을 마친 뒤 하버드대에 적을 두고 생활할 기회가 있었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짬을 내 와이드너 도서관과 하버드 옌칭도서관을 자주 드나들었다. 하버드 옌칭도서관 서가에서 도올 선생의 저술 여러 권이 비치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80년대에 발간된 도올 선생 저술은 활판 인쇄로 만들어졌다. 나는 그때 구입한 빛바랜 책에 애착이 많다. 출판 기념회 등 오프라인에서의 만남도 잦았다. 음악 애호가들이 CD보다 LP 레코드판을 선호하는 것과 마찬가지일까. 한정판으로 발간된 '어찌 묻힌단 말 있으리오'라는 책에는 도올 선생의 서도(書道) 작품과 해설이 실려 있다. 어떤 계기로든 도올 선생의 친필 휘호를 선사 받아 소장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 무척 부럽다.

도올 선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고려대 철학과에서 김충렬(金忠烈'1931~2008) 교수의 동양철학 강의를 한 학기 청강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힘든 일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소중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도올 선생을 비판하는 칼럼을 발표한 적이 있는 이한우 전 조선일보 문화부장이 1995년 출간한 '우리의 학맥과 학풍'을 다시 살펴봤다. 도올 선생과 인연이 깊었던 김충렬 교수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칼럼을 준비하면서 여러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오랜만에 통나무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다. 뜻밖에 출판사에서 다시 전화가 와서 도올 선생과 처음으로 통화하게 되었다. 격려 말씀과 함께 대구강연의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해 주셨다. 갑술환국(甲戌換局) 등 새로운 내용이 제시된 또 하나의 미니특강이라 느껴졌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면서 받아 적은 내용을 소개한다.

"조선시대에 대구경북에서 훌륭한 학자들이 많이 나오고 사상가들도 많이 나왔다. 새로운 역사의 물결을 만들려고 노력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보기에 일제시대 때 대구경북 지역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투쟁했다. 대구가 TK 의식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역사의 선도세력이 될 때 우리나라는 비로소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진보도 격이 있어야 되고, 보수도 격이 있어야 된다. 우리나라의 대의를 존중하는 진보, 보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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