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나 역시 용서를 구해야 할 인간임을

입력 2017-09-16 00:05:05

토마스 버크를 찔러 죽인 브라디라는 사형수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고발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죽어서라도 그를 저주할 거라고 소리 지르곤 했다. 사람들은 용서를 하지 않으면 죽어서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며 그를 설득하려 했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을 고발한 사람이 고발하지 않았으면 자기가 잡혀 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자신을 고발한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형 집행 전날 한 수녀님이 그에게 면회 신청을 했다. 수녀님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브라디 씨, 저는 어떤 사람을 몹시 미워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데 사실 나의 신앙으로도 그를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수녀님에게도 그런 일이 있습니까?" 수녀님의 의외의 말에 브라디의 눈빛이 빛났고 수녀님은 계속해서 말했다. "아무리 그를 용서해야 되겠다고 다짐해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회만 있으면 그를 죽이고 싶은 마음만 더해갑니다. 정말 어쩌면 좋겠습니까?" 브라디는 대답했다. "안 되지요. 수녀님이 살인이라니요. 용서를 안 하니까 수녀님 마음도 불편하잖습니까? 그냥 마음을 풀어 버리세요." "그게 안 되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신앙생활도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용서할 수 있도록 좀 더 힘쓰셔야죠!" 그러자 수녀님은 브라디의 손을 잡으면서, 떨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좋습니다. 나는 토마스를 죽인 당신을 용서하겠습니다. 그는 바로 나의 오빠입니다." 그러자 브라디는 충격을 받았다. 눈을 한참 감고 있더니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죗값은 달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저를 고발한 사람을 지금 용서합니다. 이제는 마음이 후련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신앙의 평화를 체험하고 브라디는 조용히 숨을 거뒀다.

정말 중요한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말 어려운 일이 바로 '용서'입니다. 그런데 용서하지 못할 때 다가오는 것이 스트레스입니다. 마음은 불편하고 몸도 피곤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일이 잘 안 되기도 합니다. 그 용서하지 못한 미움이, 증오가 내 삶 안에 끼어들어 와 내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입니다.

원래 내일 주일에 듣게 될 성경 말씀의 주제는 '용서'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지은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느냐고 묻는 베드로에게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18, 22). 이 말씀은 몇 번까지가 아니라 늘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용서할까 말까 따지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무조건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이야기 하나를 하십니다. 왕에게 갚기가 불가능할 만큼 많은 빚을 져서 끌려갔다가 왕이 그를 가엾게 여겨 풀려나고 빚도 탕감받은 사람이, 자신의 빚에 비하면 아주 적은 빚을 자기에게 진 사람을 만나서는 그가 사정하는데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왕이 이 일을 알고 그를 불러 말했습니다.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 23-34)

베드로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보면, 죄지은 사람에 대해 나는 더 높은 자리에서 그를 용서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고, 용서를 하고 안 하고는 나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용서는 네 마음대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너의 권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용서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도나 횟수 또는 인내의 차원이 아니라, 나 역시 용서를 구해야 할 똑같은 처지의 인간이라는 점을 먼저 기억하는 데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겸허히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이야기에서 자비로운 왕이 바란 것은 자신이 받은 것을 다른 이와 나누는 삶이었습니다. 고맙게도 용서받았으니 나도 기꺼이 힘내어 용서하는 것이지요.

매 순간 기억하고 노력해서 실천한다면, 더 감사하고 용서하며 기쁘게 살아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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