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발전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생각했기 때문…『미래 중독자』

입력 2017-09-16 00:05:05

야코프 요르단스 작
야코프 요르단스 작 '아담과 이브'(1640년경). 지은이 다니엘 S. 밀로는 인간이 '내일'을 생각하게 됨으로써 '오늘만 사는 동물의 낙원'에서 추방됐다고 말한다.

미래 중독자/다니엘 S. 밀로 지음/양영란 옮김/추수밭 펴냄

지구 상의 모든 동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위해 이미 존재하는 현재를 포기할 줄 안다. 인간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의 즐거움을 유보한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거나, 반대로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내일을 두려워해 일찌감치 미래를 포기한 채 오늘을 즐기기도 한다.(카르페 디엠)

어느 날 문득 내일을 떠올리고, 내일을 오늘의 삶으로 끌어들이게 된 인류는 위대하고도 위험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간은 삼성 핸드폰을 만들었고, 핵폭탄도 만들었다. 동물은 생각하지 않는 '내일'을 생각함으로써, 인류는 지구 생태계의 정점에 설 수 있었다. 그런 한편 내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 때문에 '오늘만 사는 동물의 낙원'에서 추방당했다.(창세기) 결국 내일은 인류를 번영으로 이끈 동력이자, 인류를 옭아맨 속박인 것이다.

이 책 '미래중독자'는 미래(내일)에 대한 기대가 이루어낸 성과와 내일 때문에 만성적인 불안과 공포, 끝없는 노동에 시달리는 인간의 모습을 진화생물학, 고고학, 문화인류학, 역사학, 언어철학을 동원해 하나씩 짚고 있다.

◇오늘을 버리고 내일만 사는 별종

"다음에 같이 밥 한번 먹자."

한국의 직장인들이 가장 자주 하는 빈말 1위다(〈SBS뉴스〉 2012년 1월 11일 자).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문제 상황을 막연한 미래로 미룬다. 사람들은 '다음에 보자'는 막연한 말을 못마땅해하면서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처럼 막연한 약속 안에 인류를 이끈 위대한 힘과 사피엔스를 인간으로 만든 위험한 특성이 숨어 있다'며 '인류가 발명한 도구나 불, 언어보다 내일이 훨씬 혁명적인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지은이는 5만8천 년 전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난 이유'에 주목한다.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이 인류가 언제 아프리카를 떠났으며 어떻게 전 세계로 흩어졌는지에 대해 규명해왔다. 그러나 왜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시원하게 규명하지 못했다.

어떤 종이 거주지를 포기한다는 것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상황과 맞닥뜨렸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이주는 심각한 스트레스를 각오하는 특수한 행위다. 지구 상의 모든 동물들 가운데 오직 인간 일부만이 소말리아 반도라는 비옥한 환경을 떠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북극까지 지구 전역으로 퍼졌다. 그러나 이주의 근거가 될 만한 기후 조건이나 자원의 부족, 또는 다른 종과의 경쟁이나 내부적인 갈등 등 어떤 생태학적 근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지은이는 '별다른 이유 없이' 말 그대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곳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기 위해' 인류는 아프리카를 떠났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지은이는 바로 이 점, '오늘을 버리고 내일을 사는 특징'을 인간만의 특징이라고 규정한다.

◇내일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축복과 저주

내일을 생각하기 시작한 뒤부터 인류는 불확실한 미래를 염두에 두느라 만성적인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그리고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준비와 계획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내게 됐다. 그 과정에서 축적과 잉여가 생겨났고, 이윽고 호모 사피엔스는 '상상의 과잉'에 빠지게 되었다. 이를 불행 혹은 번뇌라고 칭한다.

지은이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 짓는 인간다움이란 오직 내일이라는 상상과, 그 상상에서 비롯된 과잉이라는 현상뿐이다. 모든 것이 과잉으로 치닫는 현대사회의 모습은 이미 수만 년 전부터 예정되었던 셈이다"고 말한다.

이에 더해 지은이는 "과거 인류가 멸종 직전의 위험한 지경에 빠졌던 것은 뇌의 비약적인 성장 때문이다"고 말한다. 인류의 최대 장점으로 꼽는 뇌의 성장을 약점으로 꼽은 것이다. 지은이는 "뇌 부피가 커지면서 인류가 불을 통제하고 언어로 정교하게 소통하며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번성은 곧 정체를 맞는다. 뇌의 크기는 여전히 성장을 멈추지 않았지만 그에 반해 기술과 문화는 오랫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뇌 용적이 1천100㎤까지 늘어났지만 400㎤의 뇌 용적을 가진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석기 기술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뇌의 과도한 성장이 인류에게 만성적인 영양 부족과 난산, 그리고 특별하게 긴 유년기에서 비롯된 생존 위협이라는 요소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물론 뇌의 성장으로 인류세가 개막했다는 결과를 부인할 수는 없다.

◇내일을 모르던 시절로 돌아가면 행복할까

내일에 대한 기대와 공포는 인간을 움직이는 두 가지 거대한 힘이다. 인류의 역사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미래에 대한 기대로 광야를 40년간 헤맨 '모세의 탈출기'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식들을 잡아먹은 '크로노스' 사이 어디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지은이는 '현대인들 가운데서도 특히 한국인들은 미래에 중독된 채 살고 있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미래만 포기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내일을 전제로 하는 결혼, 출산, 노후 대비에 대한 기대를 놓기만 하면 오늘이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내일과 관련해 가장 극단적 선택과 과잉 반응을 보이는 사회가 한국 사회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내일'이 발명되기 이전으로 돌아가면, 우리를 사로잡는 근거 없는 기대와 불안의 과잉에서 벗어나게 될까?

지은이는 "내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오늘에 만족하는 존재는 짐승이거나 해탈한 부처다. 그러니 우리는 내일에 사로잡혀 더 많이 불안해하고 초조한 채 더욱 과잉을 추구함으로써 더 깊은 번뇌의 지옥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과잉이야말로 인간다움이다"라고 저주처럼 말해버린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양영란 박사는 "지은이의 연구 방식이나 그가 내린 잠정적 결론에 대해 논리 비약이라는 논란이 있을 수 있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 그것은 독자들에게 주어지는 권리이자 숙제다"고 말한다. 옮긴이가 이런 말을 덧붙인 것은 지은이의 주장이 흥미로우면서도 과격하고, 현재까지 정설로 자리 잡고 있는 이론들과 대치되는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324쪽, 1만6천800원.

▷지은이 다니엘 S. 밀로는….

다니엘 S. 밀로(Daniel S. Milo)는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진화생물학자로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교수로 있다. 삶에서 언제나 '과잉'에 대한 과잉된 강박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과잉된 감정을 실험적 역사 연구로 승화시켜 '시간을 배반하다'(Trahir le temps), '역사 총서'(Histoire)와 '또 다른 역사'(Alter histoire) 등을 집필했다. 지구의 역사 속 생명체들이 보여준 '삶에 대한 힘'에 관심을 가지고 생물학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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