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당시 페니실린은 인류를 각종 감염 질병에서 구한 '명약'이었고. 2001년 출시된 글리벡은 혈액암 환자들에게 생명연장의 희망을 안겨준 '신의 선물'이었다. 약이 인류를 각종 질병에서 구하고 음습한 죽음의 그늘을 걷어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약물 오남용이나 제약회사의 비뚤어진 상술은 인류를 정반대의 길로 이끌기도 한다.
최근 미국인과 유럽인의 주요 사망원인을 조사한 결과 1위는 심장질환, 2위는 암이었다. 3위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약'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인류를 질병에서 구하기 위해 고안된 약이 한편으로 인류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약의 오남용 때문이 아니라 제약회사들이 약품의 심각한 부작용을 은폐하거나 조작한 결과다. 제약회사의 영향력이 언론에까지 미치면서 그들에게 불리한 정보는 차단된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약에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다. 약은 당연히 적법한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을 것이며, 그렇지 않은 약이라면 의사가 처방해 줄 리 없다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저자 피터 괴체 교수는 제약회사의 영업이사로 오랫동안 일한 경험과 생물학과 화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제약회사가 어떻게 의사와 환자를 속여 유해하거나 쓸모없는 약을 팔아 돈을 버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심지어 저자는 제약회사의 사업 방식이 갱단이나 마피아의 조직범죄와 다름없다고까지 말한다.
제약회사의 부정은 터무니없이 높은 수익구조, 환자 건강 침해, 유력 집단에 대한 뇌물 공세가 대표적이다. 그 결과 약은 천사의 얼굴을 한 죽음으로 환자들에게 다가간다. 느슨한 규제와 너무 복잡한 경고들, 과잉 의료, 다중약물요법 등이 환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주된 원인이다.
이 책은 900여 건의 검증된 문헌과 자료에 기초하여 실명과 팩트(fact)로 무장한 제약회사 탐사 리포트다. 저자는 제약업계, 의학계, 보건의료계, 정계의 많은 문제점을 파헤쳐서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현 가능한 합리적 해결책까지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대표적인 그릇된 믿음 10가지를 소개하며 제약회사가 꾸며내서 우리가 맹신하고 있는 그릇된 믿음을 타파하려고 한다. 또 일반 독자들이 환자 입장에서 의사에게 취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응책까지 소개하고 있다.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 비용을 제약회사가 낸 세금을 이용해 정부가 지원하고, 그 결과를 전부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의사, 의약전문가단체, 환자단체, 학술지, 제약회사 사이의 금전적 연결고리를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자가 제약회사를 '살인적인 조직범죄'라고까지 규정하지만 '의약품 무용론자'는 아니다. 의사로서 일부 의약품의 혜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이 책은 이미 잘 알려진 약의 유익함에 대한 책이 아니라 약의 개발, 제조, 마케팅, 규제를 비롯한 시스템 전체의 부실함에 대한 고발이다.
지은이는 약에 대한 '그릇된 믿음'을 청산하고 보건의료 시스템의 적폐를 청산할 획기적 대안들도 제시한다. 저자는 '탈의료화'를 해결책으로 꼽는다. 정말 필요한 약은 얼마나 되고, 얼마의 비용이 드는지 따져본 뒤 영리 추구가 아닌 '필요 중심'의 신약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 제약회사 리베이트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고 약물 오남용으로 인한 사망사고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우리도 제약회사에 대한 규제와 감시, 국민들의 약에 대한 인식 전환이 시급한 때가 아닌가 한다. 사후에 '약방문'(藥方文)하는 오류를 줄이기 위해. 589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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