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무능한 정부

입력 2017-09-15 00:05:00

1936년 선거로 집권한 좌파와 공화파의 연합 정권인 스페인 인민전선은 무능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앤터니 비버가 저서 '스페인 내전'에서 '치명적인 무능'이라고 했을 정도로 정치 안정과 경제 활성화, 국민 통합 모두에서 그랬다. 그 무능의 목록 맨 위에 올려야 할 것이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이 확실했는데도 믿으려 하지 않은 태만(怠慢)이다. 그 위험이란 우파의 반란이다.

인민전선 정부가 집권한 1936년 봄부터 우파는 반란을 모의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가톨릭 전통주의자 집단인 '카를로스파', 우익 장교들의 비밀결사체인 '에스파냐 군사행동', 왕정복고를 원하는 왕당파, 극우 정당인 팔랑헤당 등 훗날 내전에서 '국민진영'을 형성한 주요 세력이 모두 참여했다. 이들은 내전에서 프랑코 장군의 가장 중요한 야전 지휘관으로 활약한 호세 발레라를 고리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군부 쿠데타 첩보도 속속 들어왔다. 그중에는 프랑코 반란군의 주요 멤버로, '스파이'를 뜻하는 '제5열'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에밀리오 몰라 장군이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다는 확실한 정보도 있었다. 이 정보는 내전에서 선동적 연설로 이름을 날린 여성 공산당원 돌로레스 이바루리가 입수했는데 즉시 당시 마누엘 아사냐 대통령에게 알렸다. 하지만 아사냐는 "몰라는 공화국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면서 애써 믿으려 하지 않았다.

무능은 쿠데타 이후에도 계속됐다. 프랑코 반란군이 완전 기습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격을 통한 국면 전환 가능성은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적이 된 군대를 해산하고 공화국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을 무장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안이었다. 하지만 공화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노동자의 무장이 어떤 사태를 불러올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망설임 끝에 인민전선은 노동자들에게 무기를 내주긴 했지만, 그때는 이미 내전이 자리를 잡은 뒤였다.

역대 남한 정부도 북핵 대응에서 이와 똑같은 무능을 보여줬다. 북한의 목표가 '핵보유국 인정'임은 누가 봐도 분명했지만, 보수든 진보든 남한 정부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미 김정은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붙들고 있는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제 핵은 핵으로만 맞설 수 있다는 상식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임에도 '전술핵 재배치'는 "북한 핵에 반대할 명분이 사라진다"며 거부한다. 이를 보며 김정은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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