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의 기억법 보여준 살인자의 기억법
'…기억법' 연쇄살인범 김병수 역
'박하사탕' 떠올리게 할 만큼
폭 넓은 감정 연기 보여줘
10㎏ 이상 감량해 외적 변화도
'공공의 적' 주먹 앞선 형사 강철중 역
공공의 적'실미도…캐스팅 0순위에서
연기 달라지지 않는 식상한 배우로 전락
'불한당' 범죄 조직 1인자 한재호 역
흥행 실패 거듭하다 '불한당'으로 재기
깊이 박힌 '강철중 캐릭터' 완전히 지워
'설-송-김'. 설경구와 송강호, 그리고 김윤석을 일컫는 말로 10여 년 전 충무로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던 A급 남자 배우들의 대명사로 쓰였다. 그 뒤를 이어 '설-송-김'에 '하류'(하정우와 류승룡)가 합류했고, 한동안 슬럼프를 겪던 톱 배우 최민식이 2010년께 다시 이들의 대열로 돌아왔다. 지난 2015년 개봉된 오달수 주연의 영화 '대배우'에서는 윤제문이 연기한 충무로 최고 배우 캐릭터에 '설강식'이란 이름을 붙였다. 설경구-송강호-최민식 세 배우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지난 10여 년간 설경구의 이름이 '충무로에서 가장 잘나가는' 남자 배우 명단에서 빠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설경구는 지난 3년간 내놓는 작품마다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는 굴욕을 당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자칫 A급 배우 명단에서 이름이 빠질 수도 있었던 위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설경구는 다행히 기사회생했다.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 흥행 성과와 달리 설경구에게 다시 뛸 힘을 줬고, 이어 현재 상영 중인 '살인자의 기억법'이 호응을 얻으며 상황이 달라졌다. 설경구가 살아났다.
충무로 최고 배우의 대명사로 시대 풍미
2000년대 초반 충무로는 그야말로 설경구의 세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데뷔 후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1999)으로 각종 시상식을 휩쓸며 주목받았고, 이후 '공공의 적'(2002)에서 강철중 캐릭터를 소화하며 연기력뿐만 아니라 흥행 파워를 갖춘 배우로 훌쩍 성장했다. '오아시스'(2002), '광복절 특사'(2002) 등 내놓는 작품마다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설경구는 정극과 코미디, 그리고 액션까지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주목받았다. '실미도'(2003)를 통해 주연배우로서 충무로 처음으로 1천만 관객 돌파의 기쁨을 맛본 이 역시 설경구였다. '공공의 적'에서 체중을 불렸다가 다시 원래 체중으로 되돌린 후 다시 '역도산'(2004)에서 거구의 몸을 만드는 등 몸무게를 고무줄처럼 늘였다가 줄이며 메소드 연기를 보여줘 호평받기도 했다. '열혈남아'(2006), '싸움'(2007), '용서는 없다'(2009) 등 만듦새와 무관하게 흥행 면에서 아쉬운 결과를 남긴 출연작이 있긴 했지만, 이 기간에 이어진 '공공의 적' 시리즈의 연이은 성공, 또 '해운대'(2009) 등 블록버스터가 일궈낸 '대박 흥행'으로 설경구는 충무로 캐스팅 라인의 최정상에 올라 '1순위로 신작 시나리오를 받아보는 배우'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캐스팅 0순위였다는 말이다.
이렇게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설경구의 위상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대개 이런 시기에 위기도 함께 찾아오곤 하는데 설경구도 마찬가지였다.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타워'(2012)의 주연배우로 나섰다가 '연기 스타일이 식상하다'는 말을 들었고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져 흥행 면에서도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아들어야만 했다. '감시자들'(2013)은 만듦새 면에서 호평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설경구가 크게 돋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 '감시자들'에서 보여준 설경구의 연기는 충분히 칭찬받을 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당시 설경구가 흥행 결과가 미리 예측되는 '큰 영화'에 주로 출연하면서 보여준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던 연기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어 개봉된 코미디 영화 '스파이'(2013)에서도 "그저 그런 연기"라는 평가를 들었다. 그나마 '소원'(2013)으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받는 등 다시 한 번 연기력을 인정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작품 이후 설경구의 행보는 말 그대로 가시밭길 그 자체였다.
2013년 소원 이후 3년간 흥행 실패로 가시밭길
'소원'으로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사실을 다시 증명하긴 했지만, 설경구에게 씌워진 '강철중의 그림자'는 큰 문제가 됐다. 워낙 임팩트가 강했던 캐릭터인 만큼 대중의 기억 속 깊이 자리 잡은 설경구의 연기가, 이후 설경구가 어떤 연기를 하든 그 위에 오버랩돼 '달라진 게 없다'는 반응을 불러냈던 셈이다. 심지어 '소원'에서도 설경구가 흥분하는 신에서 은근히 강철중의 모습이 보였다는 말을 듣곤 했다.
이 시기에 출연한 영화 '나의 독재자'(2014)는 그래도 오랜만에 설경구의 '제대로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김일성의 대역을 연기하는 삼류 배우 역을 맡아 영화의 몰입도를 높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진지한 영화의 톤 때문에 관객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아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 전쟁 코미디 '서부전선'(2015) 역시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크게 떨어져 주목받지 못했다. 공동 주연배우 박유천의 스캔들 이슈 때문에 개봉이 연기됐던 '루시드 드림'(2016)이 형편없는 완성도로 혹평받으며 설경구에게 치명타를 주기도 했다. 박유천의 스캔들 때문에 개봉이 연기됐다고 생각했다가 막상 공개되고 나서는 영화 자체의 문제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던 케이스다. 설경구가 운이 없었다.
그 뒤로 불운이면서도, 동시에 행운이 되기도 했던 계기가 마련됐다.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6)을 통해서다. 이 영화는 꽤 흥미로운 내러티브에 감각적인 연출로 완성도에 대한 호평을 들었던 작품이다. 영화의 만듦새가 좋았고 설경구의 연기 역시 되새겨 볼 만큼 인상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강철중 캐릭터의 색깔을 지우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고 은근히 섹시한 중년 남성의 이미지를 남기며 또 한 번 '연기가 되는 배우'라는 사실을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살인자의 기억법', 절치부심 끝에 부활
장애물로 가득했던 설경구의 앞길은 결국 '살인자의 기억법'을 만나면서 열리기 시작했다. 이달 6일 개봉된 이 영화는 첫 주말에 1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몰이를 했다. 이 영화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 살인범이 또 다른 살인범을 만나 그 존재를 인식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김영하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원작에 대한 관심과 함께 기대감이 커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건 설경구의 연기다.
이 영화에서 설경구는 과거 '박하사탕'에서의 연기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폭이 넓은 감정을 드러낸다. 광기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다가도 절제된 연기로 캐릭터의 성격을 적절하게 묘사해 관객의 이목을 본인의 시선에 집중시킨다. 관객은 설경구의 '원맨쇼'에 가까운 연기를 보며 '살인자의 기억법'에 매료된다. 살인자의 범행을 막기 위해 잊고 지냈던 자신의 살인 본능을 일깨우는 캐릭터. 기억과 망상을 넘나들며 흐트러지는 인물의 감정을 묘사하려고 설경구는 또 한 번 10㎏ 이상 감량을 시도하며 외적인 변화까지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서서히 나이 들어가는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분장도 필요없이 스스로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부각되는 설경구의 연기가 모노극을 보는 듯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의 메인 캐릭터를 살리려는 방편으로 설경구를 캐스팅한 건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영화와 주연배우가 동시에 살아났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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