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상 전 국민이 통일된 복장이 있었다면 남녀노소 모두 검정 고무신을 신었고, 국민 모두가 흰옷을 입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를 '백의민족'이라고 했다.
짚신, 나막신에서 검정 고무신의 개발은 생활에 기적을 이루었다. 장날 아버지가 사온 검정 고무신이 좋아 윗목에 놓아두고 자다가 만져보기도 했다. 그 당시 고무신은 질이 좋지 못해 잘 닳았다. 엄지발가락에 구멍이 나면 흙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아버지는 새 신을 사 주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신발 때우는 곳에 들러 땜질한 신을 신어야 했다. 운동회 때나 달리기를 할 때는 고무신이 잘 벗겨져 맨발로 뛰었다.
뒤에 하얀 고무신이 나왔는데 어른들은 똑같이 흰 고무신을 신었다. 백의민족 하얀 옷에 하얀 고무신이 잘 어울렸다. 잔칫날이나 상갓집에는 신발소동이 자주 일어났다. 헌 신을 벗어놓고 새 신을 신고 가는 얌체도 있었지만 똑같아 헷갈렸다. 이 때문에 신발바닥에 자기만 아는 ○, X 등의 표시를 의무적으로 했다.
회갑연에 술, 감주, 묵 등을 만들어 부조를 했는데 간편한 고무신으로 바뀌어 신발 몇 가마니를 받은 집도 있었다. 선거 때가 되면 고무신이 뇌물로 둔갑했다. 물놀이하다 떠내려가는 고무신을 따라가다 길을 잃어 고아가 된 사람이 방송국에 나와 부모를 찾기도 했다.
검정 고무신밖에 모르던 그때 그 시절 뜻밖에 운동화 배급이 나온 일이 있었다. 한 반에 한 켤레 정도로 기억된다. 발에 맞고 안 맞고는 이차적인 문제였다. 심지 뽑기를 하여 당첨되는 행운을 바라는 것도 욕심이었다.
그런데 학교가 발칵 뒤집힐 정도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발목까지 오는 진짜 가죽 구두가 전교에 딱 한 켤레 배급이 나온 것이다. 이 구두를 누가 차지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이었다. 결선 추첨에서 구두를 차지하게 된 행운아는 고릴라 같이 생긴 5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구두 때문에 응원단장이 되었고, 가을운동회 때는 그때 유행한 '차차차~ 차차차~' '3'3'7', 기차 박수를 손과 발로 리드할 때, 먼지를 일으키며 폴짝폴짝 뛰는 모습은 구두가 아니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멋진 연기를 보여 전교생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해방의 기쁨도 맛보기 전에 뜻하지 않은 6'25전쟁이 일어났다. 모두 피란길에 올랐다. 날이 저물면 피란민들은 민가에 들어가 하룻밤 신세를 졌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자고 나면 응원단장과 비슷한 발목까지 오는 구두는 감쪽같이 없어지는 것이다. 갈 길은 멀고, 맨발로 갈 수도 없고, 신발 살 곳도 없는 그때, 신발 잃은 어린이의 우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서전에 초등학교시절 부잣집 친구의 좋은 가방에 칼질을 했다고 한 바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는 빈부의 갈등, 계층 간의 갈등이 활화산이 되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원자탄보다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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