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영의 새論새評] 저우언라이가 없다

입력 2017-09-07 00:05:01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 동북아역사재단 기획실장. 경희대 공공대학원 겸임교수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 동북아역사재단 기획실장. 경희대 공공대학원 겸임교수

국민당 협상·북한과 영토 경계

저우언라이 막후서 대화 주도

中 북한 해법에 한국 입장 이해

시진핑 옆에 통 큰 협상가 절실

주말에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동북아 정세가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자국에 대한 적대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고,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도 용인할 수 없는 위협이라고 펄쩍 뛰었다. 중국과 러시아도 공식 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그러나 주변국들의 규탄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를 일축하고 핵보유국의 지위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 정부는 즉각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대응책을 모색했고 대북 규탄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대응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합참의장이 발표한 한미동맹을 통한 대응 모색과 미국 항공모함 파견 요청이 전부이다. 지난 10년간 북한에 대한 지렛대를 스스로 방기한 정부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국민을 안심시키는 분명한 메시지가 필요한 이 시점에 문재인 대통령은 상황 타개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대북 제재만을 강조하면서 우왕좌왕하고 있고, 국민들은 핵전쟁에 대한 공포로 불안해하고 있다.

북미 간의 핵전쟁은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치명적인 위해가 된다. 중국은 핵 공격의 직접적인 피해 지역이 될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대응은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치고 있다. 중국도 나름대로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위해 북한의 핵개발을 비판해 왔고 대북 제재에도 동참했다. 또 이번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도 독자 제재를 비롯한 다각적인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문제를 실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중국 시진핑 주석의 리더십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와 별개로 막후 협상을 주도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말이다. 시진핑을 대신할 수 있는 협상의 리더십이 부재하다는 사실이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현시점 중국의 최대 약점이다. 1962년 쿠바 핵미사일 위기 때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대소강경론을 견지하면서도 협상의 통로는 열어 두었다.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가 소련과의 비밀협상을 통해 쿠바에 대한 공개적인 불가침선언을 대가로 핵미사일기지를 철수시킴으로써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았다.

이런 맥락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초대 총리 저우언라이(1898~1976, 周恩來)가 떠오른다. 그는 중국 공산혁명의 지도자로서 대내적으로 협력과 화합을 도모했고 대외적으로는 대화와 협상에 앞장섰다. 국민당과의 전투에서는 마오쩌둥이 선두에서 지휘했다면, 국민당과의 협상은 저우언라이가 맡았다. 북한과의 영토 분쟁도 그가 나서서 원만하게 해결했고 그 결과가 '조중변계조약'으로 남아 오늘날까지도 천지의 55%를 북한이 소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저우언라이는 중국인들로부터 한때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특유의 친화력과 포용력으로 주변국으로부터 진심 어린 존경을 받아 중국의 안정화에 기여했다. 그 연장선에서 추진한 미'중 데탕트가 성공하면서 중국이 세계적인 국가로 도약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중국에는 저우언라이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시진핑 주석 홀로 국제관계를 끌고 가는 것은 무리일 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에게 위협을 준다. 약소국을 이해하고 약자의 편이 되어주는 지도자가 없는 강대국은 공포의 대상일 따름이다. 지도자 하나의 목소리로 말미암아 전 중국인이 한목소리로 사드를 배치한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실상을 바라보면서 중국과의 우의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것은 강대국으로서 행할 도리가 아니다.

맹자는 힘으로 주변국들을 제압하고자 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갈파했다. 나아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는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지만 강압적인 대외관계는 재앙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실로 강대국이 약소국의 입장을 헤아리고 협상력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하늘의 도리를 즐기는 것이고 이때 비로소 천하가 보전된다(樂天者保天下). 다음 달로 예정된 중국 공산당 제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거론되는 차세대 지도자 중에 저우언라이와 같은 통 큰 협상가가 보이지 않아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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