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인 1917년 12월, 대구와 경북이 들썩했다. '대구은행 돈 1만500여원 군자금 사건' 때문이었다.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었던지 일제 경찰은 뒷날 '제1 경북 중대 사건'이라고 불렀다.(당시 '군자금'은 1만400~1만9천여원까지 다양하나 필자는 1만500원으로 보고 오늘날 한국은행의 기준에 따라 계산한 결과 1억3천115만여원으로 추정됐다) 과연 100년 전, 대구은행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대구은행은 1913년 대구의 민족자금으로 설립됐다. 1912년 창립된 선남은행과 함께 대구에 본점을 둔 지방은행이다. 두 은행을 비롯,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인 설립 은행이 허락된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을 일본 식민지 시장경제로 편입시켜 상품을 팔아먹는 시장으로 예속하고 한국 자산가의 친일 세력화, 특히 한국인 돈을 은행에 묶어 독립운동가 지원이나 군자금으로 쓰이는 것을 막는 등 침탈 목적이 컸다.
그런데 범인은 21세의 출납계 이종암(李鍾岩) 주임이었다. 그는 1914년 입사, 이듬해 결혼한 신혼의 젊은이였다. 특히 그의 고모부(정재학)가 대구은행장이어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한마디로 말하자면 장래가 촉망되는 행원이었다. 당시 좋은 일자리는 대부분 일본인 차지여서 한국인으로서는 더욱 구하기 힘든 은행원이었다.
당시는 작가 이광수가 공개적으로 일제 총독에게 한국 젊은이가 '할 일이 없어' 독립운동과 같은 '전율할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일자리를 마련해줄 것을 촉구할 만큼 일자리가 없었다. 은행 등은 '사무가 고상하고 복잡하여 한국인을 사용하기 어려워 당국에서도 당분간 일본인을 주로 쓰는 자리'라 할 정도였으니 이종암 사건은 충격이었다. 그러잖아도 한 달 전에는 내로라하는 부자인 칠곡의 장승원 전 경북도관찰사가 독립군자금 문제로 암살된 뒤라서 일제는 범인 검거에 더욱 혈안이었다.
그러나 종적을 감춘 그는 1918년 중국으로 망명, 은행 돈을 군자금으로 썼다. 그는 '빼돌린 돈'을 특히 1919년 중국에서 결성된 무장투쟁 결사인 의열단(義烈團) 창설에 보탰고 그의 독립 활동은 일제의 은행 설립 허가 속셈을 보기 좋게 찌른 의거(義擧)였다. 창단 단원 13명인 의열단 부단장으로 숱한 투쟁 중 1925년 대구에서 붙잡혀 1927년 징역 13년 형 선고와 감옥살이, 1930년 35세로 순국한 그에게 대구은행 돈은 독립자금의 마중물이었다.
그러나 대구은행은 뛰어난 영업 실적과 경영에도 1928년 여러 면에서 못한 부산의 경남은행과 합병되고 다시 1941년 서울의 한성은행에 흡수되면서 사라졌다. 대구은행이 총독부에 의해 흡수'합병된 운명과 역사에서 사라진 배경이 경제 외적인 탓이라는 학계 연구 결론을 보면 이종암의 '대구은행 돈의 군자금화'가 원인이 아니었을까.
이런 대구은행이 1967년 부활했다. 일제 때처럼 대구경북 지역민들의 뜻에 의해서다. 그리고 '대구의 돈은 대구은행으로'라는 향토색 짙은 구호와 김준성이라는 초대 행장의 뛰어난 역할과 지역민들의 아낌없는 사랑으로 1997년 외환 위기의 어려움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는 대구경북에서 대구은행의 탄탄한 기반이 말해준다.
하지만 최근 대구를 떠들썩하게 한 대구은행 여직원 성추행 사건, 특히 자리를 둘러싼 잡음 같은 일들을 보면 어이가 없어 절로 한숨이다. 물론 현 대구은행과 100년 전 대구를 들썩인 이종암의 대구은행은 역사적으로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그래서 굳이 100년 전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일조차 마땅하지 않고 억지처럼 여길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100년 전 대구은행의 한 젊은 행원의 의거를 떠올린 것은 지역민들의 돈을 비록 당시는 몰래 빼돌렸지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오로지 나라를 되찾는 의로운 독립자금으로 쓰고 활동했음에도 뒷날 대구의 은행 종사자들이 잘 모르고 무관심한 사실이 그저 안타까워서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쏟을 여력으로 차라리 그를 기리는 작은 동상이나 기념비라도 세울 생각이었으면 이번 같은 일이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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