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왜?…의문에서 시작하는 명화 감상법

입력 2017-09-02 00:05:01

손바닥 위 미술관

손바닥 위 미술관/ 동요우요우 지음/ 남은성 옮김/ 티핑포인트 펴냄

젖가슴을 드러낸 여자가 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연상케 하는 S자 곡선이 두드러지는 자세를 하고 있다. 여자의 옆에는 하의를 벗은 남자가 있다. 영화 '엑스맨'이나 '어벤져스'의 울버린이나 헐크처럼 근육질 몸매를 뽐내려는 남성이 흔히 상반신을 노출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하반신을 적나라하게 노출한 남자는 단추를 반쯤 풀어헤친 흰 셔츠를 입고 한쪽 발에만 양말을 신은 채 누워 있다. 얼굴이 붉어질 묘사다. 하지만 이것은 '19금' 영화나 성인만화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1) 이야기다. 의회 해산, 선거권 박탈에 이어 출판과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 샤를 10세에 항거한 프랑스의 1830년 7월 혁명을 표현한 그림이다. 그렇다면, 들라크루아는 시민군의 모습을 왜 이렇게 그렸을까.

◆배경을 알면 더 재미있는 명화

미술 작품을 적극적으로 감상하려면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화가의 재치, 도상, 시대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인으로 프랑스에서 미술사와 고고학을 공부한 미술 전문 칼럼니스트 동요우요우가 명화가 재미있어지는 감상법을 제시한다. 동요우요우는 '손바닥 위 미술관'에서 "명화를 해석하려면 그림을 관찰하라"고 제시한다. 저자는 "작품의 세부적인 부분과 인물 표정을 하나하나 따져 '왜?'라고 묻기 시작하면 그림이 흥미로워진다"고 말한다. 우선 그가 권하는 작품은 18점이다. 그리고 '권력' '사랑' '태도' '대도시'라는 키워드로 묶어 명화를 구석구석 뜯어본다. 그림에 관심이 있었다면 한 번쯤 봤을 작품부터 알려지지 않은 비밀을 여럿 품은 작품까지.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는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라는 '루브르 3대 유물' 말고도 눈길을 끄는 작품이 수없이 많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도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와 황후 조세핀의 대관식' 등과 함께 박물관 드농관 77번 전시실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을 모으는 명작 중 하나다. 그림 속 여자는 왜 가슴을 훤히 드러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모자는 해방과 자유를, 맨발과 노출된 가슴은 신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남자는? 마찬가지다. 저자는 "바지가 벗겨진 채 죽은 남성은 약탈을 당했고, 아군'적군을 가리지 않고 마구 자행된 약탈은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게 한다"라고 해석한다. 이외에도 이 그림엔 다른 비밀이 숨어 있다. 그림을 마주 봤을 때 '자유의 여신'의 왼쪽에 있는 세련된 정장을 입고 총을 들고 서 있는 남자가 들라크루아 자신이며, 그는 동조의 뜻을 자신을 등장시킴으로써 표현했다고 한다. 빅토르 위고는 소설 레미제라블에 들라크루아의 이 그림에서 본 구두닦이 소년('여신'의 오른쪽에 있는 소년)을 등장시킨다.

◆비밀을 알려면 숨은 그림을 찾아라

명화는 보기만 해도 좋지만 숨은 뜻을 알면 더 재미있다. 그래서 이 책은 객관적 정보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이미 아는 그림이라도 '샅샅이 관찰'하고 '꼼꼼히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래야 그림 속 인물들이 자신들만의 비밀을 공유한다고.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도 마찬가지다. 교과서에서 봤을 법한 이 그림에서 나폴레옹은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워주러 하고 있다. 하지만 다비드가 처음 완성한 밑그림은 나폴레옹이 스스로 왕관을 쓰는 모습이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유럽 대관식의 전통대로 왕관을 씌우려던 교황 비오 7세로부터 왕관을 뺏어 들고 자신이 스스로 썼고, 이를 지켜본 다비드는 자신이 본 그대로 직접 관을 쓰는 모습을 스케치했다. 하지만 권력지향적인 화가 다비드는 나폴레옹이 지나치게 오만해 보이는 최초의 드로잉 대신에 들어 올린 팔을 황후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워주려는 모습으로 바꿨고, 논란을 피하면서 나폴레옹의 권위를 더욱 강조했다. 나폴레옹의 뒤에 무기력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교황이 주교관 대신 주케토를 쓰고, 밑그림에서보다 작게 그려진 것도 같은 이유다. 우아한 기품을 지닌 20대 아가씨로 보이는 조세핀은 당시 아이를 둘 낳은 40대 이혼녀였다. 이 그림에는 그날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이 여럿 있다. 그중 한 사람은 그림 중앙 귀빈석에 흰 드레스를 입고 앉아 있는 여인이다.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지아 보나파르트는 나폴레옹과 조세핀을 탐탁지 않게 여겨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새 황제의 집안이 화목하다는 인상을 주려고 그려 넣었다고 한다. 카프라라 추기경과 나폴레옹 사이에 서 있는, 짧은 머리카락에 눈빛 레이저를 쏘는 남자는 고대 로마의 명장 율리우스 카이사르(B.C. 100~B.C. 44)다. 이쯤이면 이 그림에서 '진짜'는 무엇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작가 미상의 그림 중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녀의 여동생 빌라르 공작부인의 초상'은 연작이다. 붉은 장막이 드리운 욕조에 들어앉은 두 여인이 걸친 건 귀고리뿐이다. 더 당황하게 하는 건 그림 왼쪽 여동생이 언니의 젖꼭지를 만지는 모습이다. 당시 성행한 동성애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란 해석도 있지만, 저자는 동생의 행위를 통해 가브리엘이 임신 중이라는 것을 유추한다. 가브리엘은 앙리 4세의 정부(情婦)였다. 가브리엘이 보란 듯이 든 반지도, 이후 그려진 시리즈물에서 차례로 등장하는 아이들도 이들의 관계를 추정할 수 있게 한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빗장'에서 한 손으로 여인을 안고 다른 손으로는 빗장을 걸어 잠그려는 '멀티플레이'를 하는 남자와 상남자의 힘에 못 이겨 휘둘려 안긴 여자는 어떤 사이일까? 얼핏 보면 난폭하고 강압적인 범죄현장 같은 이 그림이 사실은 스릴있는 연애라는데.

책은 명화에 구석구석 질문을 던지면서도 함께 보면 좋을 추천작, 그리고 화가의 항변까지 담았다. 그저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숨겨진 또 다른 의미는 없는지' ' 다른 해석은 없는지' 찾아보게 하는 마력이 있다. 명화를 감상할 준비가 다 된 것 같은 기분에 아는 그림을 '폭풍 검색'하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416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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