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우리 머릿속의 광복

입력 2017-08-15 00:05:05 수정 2018-10-10 16:32:57

미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인물은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다. 그는 러'일 전쟁을 종결하는 중재안을 내고 포츠머스 조약을 성사시킨 공로로 19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독일과 프랑스의 '모로코 위기' 해결 노력도 있다. 하지만 루스벨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이 중재안의 꺼풀을 들쳐보면 추잡한 미'일 간 외교 교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루스벨트는 '약한 나라는 망하고 강한 나라가 살아남는다'고 믿은 인물이다. 또 그는 외교 문제에서 최선의 방법은 "부드러운 말과 큰 막대기"라고 늘 강조했다. 이는 어르고 달래다 안 되면 몽둥이가 약이라는 뜻이다. 당시 미국과 유럽 언론은 이를 '큰 몽둥이 정책'(Big Stick Policy)이라고 비꼬았다.

루스벨트는 러시아보다 일본에 더 호감을 가진 인물이었다. 국력과 국체의 우열에 관한 비뚤어진 소신과 개인적 성향은 일본과 밀착해 미국의 이익을 챙기는 외교적 수완으로 나타났다. 1905년 7월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이익과 조선'만주에 대한 일본의 우위를 인정하는 밀약을 맺은 것이다. 훗날 큰 논란이 된 태프트-가쓰라(桂) 비밀 각서다. 미국 정'관계 거물로 구성된 아시아 사절단의 극동 순방 때 도쿄에서 일본과 마주 앉은 태프트는 부드러운 말과 미소로 각서 문구를 다듬었을는지도 모른다.

필리핀 초대 총독을 지낸 윌리엄 태프트는 당시 육군 장관으로 루스벨트의 최측근이자 친구였다. 그해 9월 루스벨트의 망나니 딸 앨리스와 함께 대한제국을 찾은 태프트는 각서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다. 고종의 극진한 대접만 받고는 조선을 떠났다. 각서 내용은 1924년까지 극비에 부쳤다. 약소국을 압제와 수탈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미국 이익을 챙기기에 바빴던 루스벨트에게 결국 '세계 평화의 수호자'라는 분칠과 함께 노벨상이라는 덤까지 얹어준 것이다. 1908년 루스벨트는 일본인 이민 문제로 불편해진 미'일 관계를 의식해 루트-다카히라(高平) 조약(태평양 지역에서의 미'일 교환공문)을 맺고 조선'만주에서 일본의 우위를 재확인했다.

미국 이익을 우선하는 미국 정부의 이런 외교 기조는 '애치슨 라인'에서도 잘 드러난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50년 1월 '애치슨 라인'을 선언하고 아시아 방위선에서 한국과 대만, 인도차이나 반도를 뺐다. 전략적 가치가 없다며 한국에 등을 돌린 순간 6'25라는 비극이 들이닥쳤다.

다시 광복절이다. '적폐 청산'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안팎으로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연일 핵과 미사일 카드를 흔들어대는 북한과 사드 협박에 열을 올리는 중국, 종잡기 힘든 트럼프 대통령의 과격한 '말폭탄'이 쉴새 없이 우리 머리 위로 오간다. 잔 펀치와 말 돌리기에 능한 북한과 중국을 향해 미국 정치권도 선제공격과 무역전쟁, 대화를 제각각 주문하며 뒤엉켰다. 국내 주식시장이 며칠째 곤두박질 치고 환율은 치솟았다. 8월 위기설이 나돌고 있으나 우리 정부의 반응은 조용하다. 절묘한 해법을 찾아서가 아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상황을 관리할 능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전자파라는 뿌리를 타고 마냥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

일제 침략과 압제의 먹구름이 걷혔다는 '광복'(光復)의 날이 이리 어수선한 것은 불안한 국제 정세 탓만은 아닐 것이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전히 국체를 위태롭게 만드는 우리 정치와 국태민안보다 탐욕과 세력 다툼이 더 넘쳐나는 게 근본 이유다. 지금 우리의 눈과 귀가 쏠려야 할 곳은 화염이나 분노 같은 감정적인 대상이 아니다. 그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냉정함과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이다.

급부상한 일본의 해군력은 루스벨트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밀약이 나왔고 조선이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힘이 없다면 눈이라도 밝아야 한다. 우리가 계속 편견에 사로잡혀 바깥세상을 바로 보지 못한다면 광복은 영원히 불안한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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