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트인 반원형의 궁전광장 웅장
꼭 가봐야 할 에르미타주박물관
라파엘'미켈란젤로 등 작품 전시
12사도 품은 성이삭성당도 필수
야간 붉은 화살 열차로 이번 여행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마지막 종착지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간다. 23시 55분에 출발한 '붉은 화살' 열차의 창밖은 어둠 속에서도 설경이 끝없이 펼쳐져 보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은 그리운 여인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가득 찼다. 러시아판 '사랑과 전쟁'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생각하다 얼핏 침대에서 선잠을 잤는데 열차는 어느새 긴 겨울밤을 몰아내고 종착역에 도착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5개의 기차역이 있다. 모스크바처럼 목적지에 따라 역이 나뉘어 행선지 방향의 주요 도시 이름으로 되어 있다. 모스크바역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 네프스키대로변에 있으며, 모스크바행 초고속열차와 야간열차를 탈 수 있는 곳이다. 최대 규모의 기차역답게 중앙홀 벽에는 러시아 전역의 철도망과 주요 역이 걸려 있다. 레스토랑과 카페, 기념품점, 약국, 통신사 등이 있으며, 매표소는 외부 건물에 별도로 있다. 메트로는 뿔로쉬찌 바스따니야역으로 중앙홀과 연결되어 있다.
러시아 북서부에 위치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0월 혁명의 태생지로 모스크바에 이은 러시아 제2의 도시다. 과거 러시아 제국의 수도로 열강에서도 손꼽혔던 제국의 유산이 산재해 있어 러시아를 대표하는 관광지이다. 인구는 500여만 명으로 러시아 최대의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표트르대제와 예카테리나여제 등 두 군주의 주도로 '세계 여느 수도에도 뒤지지 않는 유럽풍 도시'로 건설됐다. 이곳에 있는 겨울궁전과 여름궁전의 위용은 절대군주의 호사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19세기 러시아에선 '러시아의 심장은 모스크바이고, 러시아의 머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에서 인기가 아직도 하늘을 찌르는 푸틴 대통령도 이곳 출신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조각품이자 박물관이다. 시내에는 모두 100여 개의 박물관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대제가 17∼18세기 북방전쟁에서 스웨덴의 침공을 막기 위해 파블로스키성을 쌓으면서 이루어진 도시로 모든 건물은 바로크 양식의 5층 이하로 지어졌다. 모스크바의 건축물들이 다소 동양적이라면 이곳의 건축물들은 서양적이다. 이런 연유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서유럽으로 가는 통로'라는 호칭으로도 불리며. 푸시킨은 '유럽을 향해 열린 창'이라고 불렀다.
또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북쪽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수상의 도시다. 네바강을 두고 시내가 둘로 나뉘고 수많은 운하와 아름다운 다리를 가지고 있다. 수많은 섬과 운하들이 300여 개의 크고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아름다운 도시로 러시아와 유럽의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정러시아의 오랜 수도인 이곳은 도스토옙스키, 푸시킨, 차이콥스키 등 세계적 문화예술가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문화예술의 상징적 도시이기도 하다.
모스크바의 상징이 붉은 광장과 크렘린이라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징은 에르미타주박물관과 여름궁전이다. 탁 트인 반원형의 궁전광장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의 중심이다. 궁전광장이라는 명칭은 18세기 황제들의 거주지였던 겨울궁전이 들어서면서부터 생겨났다. 네바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에르미타주박물관은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겨울궁전과 4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국제학생증이 있다면 관람료가 무료이니 학생 신분이라면 반드시 국제학생증을 발급받아서 가도록 하자.
에르미타주박물관은 약 300만 점의 전시물을 보유하고 있다. 전시장을 따라 모두 보려면 그 거리가 30㎞나 된다. 박물관은 제정러시아 황제의 거처였던 '겨울궁전'과 네 개의 건물이 통로로 연결돼 있다. 1천50개의 전시실과 2천여 개의 창문, 120개의 계단이 있으며 지붕 위 조각상도 176개나 된다. 꼭 둘러봐야 할 곳은 125개의 홀을 차지하고 있는 서유럽의 전시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 미켈란젤로, 루벤스와 렘브란트 등 유명 화가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에르미타주박물관의 소장품들이 대부분 제정러시아 당시부터 이어져온 수집과 기증에 의한 것이라면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의 소장품들 다수는 탈취에 의한 전리품이라는 것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래서 에르미타주박물관의 역사적'예술적 가치에 더욱더 찬사를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가 제공 중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또 하나의 대표적 명소는 네프스키 거리다. 네프스키대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이자 최대 번화가로 대로를 지나다 보면 모이카, 그리바예도프, 폰타카 등 크고 작은 운하를 만나게 된다. 대로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관광지가 몰려 있어 도보 여행에 제격이다. 궁전광장에서 나오면 바로 네프스키대로와 이어진다. 페테르부르크 시대의 작가들이 즐겨 모이던 볼리파라는 찻집과 카잔성당, 상트페테르부르크 최대의 백화점인 스디니드보르, 박물관과 극장이 모여 있는 브로드스 거리의 예술광장과 연결되어 있다. 거리에는 제정러시아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어 천천히 걷다 보면 왜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마침 대로변의 눈 덮인 카잔성당에서 종소리가 청아하게 공기를 갈랐다.
러시아 최대 정교회 건물인 성이삭성당은 프랑스 출신 건축가 몽페랑이 40년에 걸쳐 1858년에 완성한 건물이다. 고전주의 양식과 전통적인 러시아 비잔틴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성당은 높이가 101.5m, 내부는 4천㎡에 달한다. 100㎏의 황금을 사용한 황금 돔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내부의 벽화는 성인들 모습과 성서 이야기로 꾸며져 있으며, 중앙 제단의 그리스도 부활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인상적이다. 돔의 천장은 12사도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으로 꾸며져 있어 웅장함에 압도당할 지경이었다. 내부에는 당시 건축 방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진과 축소 모형이 걸려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석양에 물든 네바강변과 아름다운 시내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전망대로 가려면 별도 티켓을 구입해야 하며 성당 바깥쪽 입구로 가야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또 다른 모습에 넋을 잃고 있다가 서둘러 마린스키극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마린스키극장에서 '백조의 호수'를 보고 싶어 호텔에 예약을 부탁해 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접속해도 모두 매진이었다.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지만 마린스키극장을 보고 싶어 조금 일찍 그곳을 찾았다. 창구에서 혹시 반환 표가 있는지 기다린 보람이 있었는지 극적으로 입장권을 살 수 있었다. 극장에 들어가자마자 배낭과 두꺼운 옷을 맡겼다. 다른 관객들보다 일찍 입장한 덕에 2층 로비에서 극장을 돌아보며 조용한 내부를 마음껏 즐겼다.
객석 옆자리에 잘 차려입은 할머니가 앉아 무대 위의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예술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애정은 언제 보아도 놀랍다. 오후 7시에 시작된 공연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객석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극장을 빠져나오면서 밤거리가 활기를 띠었다. 러시아의 저력은 넓은 국토와 풍부한 자원이 아니라 수세기 동안 다져진 문화적 토양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ymahn1102@hanma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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