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재원의 새論새評] 장진호 전투, 끝나지 않았다!

입력 2017-07-06 00:05:01

부산대 졸업. 영국 엑시터 대학 국제학 석사. 전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 정의 화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부산대 졸업. 영국 엑시터 대학 국제학 석사. 전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 정의 화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 합의

日 위안부·中 사드문제 압박

미국도 혈맹 의리보다 국익

67년 전 전투는 현재진행형

지난주 한미정상회담의 최대 키워드는 '장진호 전투'였다. 6'25전쟁 당시 미군이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며 중공군 남하를 지연시켜 피란민들의 흥남 철수를 가능케 했던 전투. 방미 첫 일정으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장진호 전투로) 10만여 명의 피란민을 구출한 흥남 철수 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고, 빅토리아호에 오른 피란민 중에 제 부모님도 계셨다." 이어 한미 양국이 동맹으로서 함께할 것을 다짐했다. 개인적 인연에 기초한 연설은 미국 조야에 잔잔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저기서 칭송하는 얘기를 들었다. 매우 훌륭하고 감동적인 연설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껏 추어올렸다.

그런데 '미군 역사상 최악의 전투'로 인식돼온 장진호 전투는 기념비 제막식(지난 5월 4일) 전까지 미국인들에겐 낯선 단어였다. 원인은 미군이 사용한 지도 탓이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말로 된 지도가 없었다. 부득이 일제강점기 때 만든 것을 사용했다. 장진(長津)이라는 지명이 일본어 독음인 '초진'(ちょうしん)으로 표기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미군들은 장진을 'Chosin'으로 불렀다. 초진이라는 발음은 나중에 'The Chosin Few'라는 말로 발전한다. '선택받은 소수'라는 뜻의 'The Chosen Few'를 패러디한 것이다. 장진호 전투의 생존자가 얼마 되지 않고, 희생자가 그만큼 많았음을 기리기 위한 말이었다.

장진호 전투를 두고 일제 잔재를 곱씹는 이유는 분명하다. 일본 제국주의 망령이 오늘도 배회하고 있는 탓이다. 한미 정상은 6일(현지시간) 독일의 G20 정상회의 때 한미일 3국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했다. 이 소식에 일본 아베 총리는 기다렸다는 듯 도발적 언사를 내놓았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서 조기 철거를 요구할 계획이다." 그는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 촉구"라는 핑계를 댔다. "일제가 저지른 만행의 진실한 반성과 사과, 그 토대 위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자." 우리의 호소엔 모르쇠로 일관하겠다는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중국의 시선도 예사롭지 않다. "(사드와 관련한) 한국의 주권적 결정에 대해 중국이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문 대통령이 중국의 경제 보복 철회를 공개 요구한 때문이다. 그렇다고 쉽게 손을 들 중국이 아니다. 자국 이익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된다면 언제나 개입했다. 생생한 역사적 실례가 장진호 전투다. 당시 중국은 38선을 돌파한 미국에 북진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미군이 압록강까지 올라올 경우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이 무시하자 중국은 몰래 참전했다. 장진호에서만 미 해병1사단의 10배나 되는 10만여 명의 중공군 인해전술로 기습을 감행했다.

미군은 숱한 희생자를 내면서도 끝까지 항전, 중공군의 예봉을 꺾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때 퇴각한 미군은 다시는 북진을 꺼려 했다. 전선이 38선에 고착되자 서둘러 휴전협정에 나섰다. 이승만 정부와 한국민들의 애타는 '북진통일' 호소는 귓등으로 흘렸다. 미군의 피를 더 흘리기보다 현상 유지를 선택했다. 전쟁 발발 이전의 미소 냉전 최전선 복원이 미국의 국익과 정확히 일치했던 것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은 계산에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우리 정부의 남북관계 주도권은 인정했다. 대신 경제적 대가를 톡톡히 챙겼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한미 FTA 재협상 요구가 대표적이다.

장진호 전투의 원초적 원인 제공자인 북한도 과거와 조금도 달라진 모습이 아니다. "미국과의 동맹 강조는 지배'예속 올가미"라며 맹비난했다.

아직도 남한을 '친미주구'로 인식하며 한판 맞짱도 불사하겠다는 북한, 제국주의 미몽에 사로잡힌 일본, 손톱만큼도 손해는 보지 않겠다며 패권적 분풀이에 매몰된 중국, 혈맹 의리보다 국익 셈법에 능한 미국. 67년 전 장진호 전투는 분명한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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