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문자 폭탄

입력 2017-06-26 00:05:01

한국인들만큼 '폭탄'이라는 말을 애용하는 국민도 드물다. 과하다 싶은 사안이면 '폭탄' 자를 가져다 붙인다. 폭탄주, 폭탄 세일, 세금 폭탄, 예산 폭탄…. 이러다가는 외국인들의 눈에 한국이 테러리스트들의 천국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요즘 시중에 새로운 '폭탄'이 하나 추가됐다. '문자 폭탄'이다. 문자 폭탄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이후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정치 현상에 붙여진 신조어다. 국회의원들의 휴대폰 번호가 노출되면서 유권자들이 문자 메시지로 의견을 피력하는 일이 다반사가 됐는데 내용이 거친 것이 많다 보니 정치권의 반응도 감정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문자 폭탄을 경험한 정치인들의 시각은 매우 부정적이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유린" "개인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 운운해가며 문자 폭탄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도가 지나친 욕설이나 협박성 메시지를 보낸 153명을 추려 검찰에 고발했다. 국민의당도 문자피해대책 TF를 구성하는 등 문자 폭탄 관련 입법 발의에 나서기로 했다.

비난과 욕설 가득한 메시지가 쏟아질 경우 당하는 입장에서는 폭탄 맞은 기분일 수 있다. 쇄도하는 메시지 때문에 일을 제대로 못 할 지경이라는 정치인들의 하소연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문자 메시지를 통한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에 정치권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슬기롭지 못하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이 동료 의원에게 전한 훈수는 새겨들을 만하다. "처음에는 성가시지만 며칠 지나면 적응이 된다. 요즘은 문자가 너무 없어 문자 폭탄이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하루 만 개도 넘는 문자 폭탄을 받을 때가 정치 전성기였다. 살해 협박 같은 문자나 음성 메시지도 있었지만 실제 테러 시도는 없었으니 큰 걱정 안 하셔도 된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피드백을 달갑게 여겨야 한다. 비록 그것이 눈에 거슬리고 쓰게 느껴지더라도 마찬가지다. 기꺼이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반대 유권자의 마음을 얻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정치 행위인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유권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밤낮없이 스팸처럼 발송하는 정치인들이 문자 폭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내로남불'일 수 있다. 또한 문자 메시지를 보낸 유권자들과 일전을 벌이겠다는 발상 자체가 단견이다. 그것은 하수(下手)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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