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희구의 시로 읽는 경상도 사투리] 서거정(徐居正)

입력 2017-05-18 00:05:00

생전에 만여 수가 넘는 시를

남겼다고 한다

세상의 온갖 것에 달통하고

이를 모두 시로 꿰었으나

이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소 오줌과 말똥(牛溲馬勃)까지도

다 취해야 했을 터

육대조(六代朝)에 걸친 공경대부(公卿大夫)의

벼슬길에도 조복(朝服)의 깃에

때가 끼지 않은 것은

한평생 시로 몸을 닦았기 때문

(시집 『권투선수 정복수』 2015 오성문화)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대구 출신으로 조선의 대문호이자 대구의 큰 어른이다. 45년에 걸쳐 여섯 왕을 섬겼으며 조선의 문신이며 학자. 자는 강중(剛中), 초자(初字)는 자원(子元), 호는 사가정(四佳亭)'정정정(亭亭亭), 본관은 달성(達城). 목사(牧使) 미성(彌性)의 아들, 권근(權近)의 외손.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고, 그 이래로 1456년(세조 2)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 이듬해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을 했다.

선생의 출생지가 대구는 아니지만 서거정은 본관지 대구를 '내 고향'이라 부르면서 친향(親鄕)에 대한 애틋한 감정의 흔적을 군데군데 남겨두었다. 대구(大丘)의 풍광이 좋은 10곳을 시로 노래한 '大丘十詠(景)'이 그중 하나이다.

또한 선생은 항상 고향인 대구를 끔찍하게 여겼는데 근자에 과거에 급제하는 향리(鄕里)의 인물이 점점 줄어들자 이를 염려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사가집'(四佳集) 권 12, '송도장원하환향시서'(送都壯元夏還鄕詩序)에 이르기를 "나의 고향 대구는 경상도의 거읍(巨邑)이다. 그 산천의 수려한 기상이 의당히 영재를 산출할 것이어늘 어찌 수십 년 이래로 문헌이 조사(凋謝)하고 그 습속이 투수(偸隋)하여 한 사람의 문인 재사(才士)도 나오지 않느냐"고 한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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