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아직 완장은 남아 있다

입력 2017-05-15 00:05:00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정말 재미나게 읽었던 윤흥길의 '완장'이란 소설이 새삼 떠오르는 요즘이다. 이 소설은 월급 5만원에 저수지 관리원이 된 임종술이 완장을 차고 권력의 맛에 길들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임종술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권력에 대한 선망과 원망, 복수, 공포를 다루고자 했다.

실제로도 완장은 그만한 힘이 있었다. 그 옛날 학창시절 교문 앞을 지키고 있던 선도부를 생각해보라. '선도'라는 완장을 차고 두발검사, 복장검사, 지각 등을 감시하던 병영의 헌병과도 같은 학생 경찰이었다. 학교 앞에서 교복의 '호꾸'(교복의 목 부분을 잠그는 고리)를 채우고 비뚤어진 모자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만지며 종종걸음으로 마음 졸이던 등굣길이 생각난다. 완장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가 조선인을 감시하기 위한 일본경찰의 앞잡이들에게 준 비표였다. 완장의 위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방 정국과 6'25전쟁 때의 완장은 죽고 사는 생사 여부를 쥐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완장의 권력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길거리 무허가 좌판을 걷어내던 이들의 팔뚝에도 완장이 있었고 각종 불법을 감시하던 이들에게도 완장이 있었다.

완장을 찬 이들은 완장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권력의 본질에 눈을 뜨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첫째는 자신에게 완장을 채워준 권력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는 그 완장의 힘을 빌려 권세를 극대화할 때만이 자신이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넘어서서까지 그 완장의 위세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 이르면, 완장을 찬 그자는 이제 권력의 화신이 된다. 권력의 맛에 취해서 안하무인이 되고 권력을 사용하고 싶어 근질거리는 근육을 어찌할 수가 없다. 주변에서도 끊임없이 유혹으로 부추긴다. "힘은 있을 때 쓰는 거야!" "너, 힘없어 봐라. 제일 먼저 달려드는 게 너에게 당한 자들이야." 권력에 대한 번민이 쉴 새 없이 요동친다.

이러한 유혹을 뿌리칠 힘은 이성이며, 절제와 자기 통제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으나마 권력에 맛 들인 권력의 화신들은 이성과 절제가 없다. 다만 브레이크 없는 권력욕에 사로잡히다 보면 때로 권력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도 생긴다. '완장'의 임종술은 이렇게 외쳤다. "눈에 뵈는 완장은 벨 볼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중략) 권력 중에서도 아무 실속 없이 넘들이 흘린 뿌시래기나 주워 먹는 핫질이 바로 완장인 게여."

자신이 그 핫질(下質)인지도 모르고 아직도 완장질을 하는 '하빠리'들이 많이 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에선 제발 '완장 문화' 하나만큼은 사라지길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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