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대전의 근접 참호전은 적을 신속히 제압할 수 있는 무기의 필요성을 절감케 했다. 당시 보병의 무기는 단발식 소총이어서 수적으로 우세하지 않으면 공격하는 측이나 방어하는 측 모두 승기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배경하에서 개발된 것이 '톰슨 기관총'(미국), 'MP40'(독일), 'PPSH-41'(소련) 등 기관단총이다.
일본도 기관단총을 개발했다. 1차 대전 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독일의 'MP18'을 그대로 베낀 '100식(式) 기관단총'이다. 문제는 2차 대전 기간 중 생산된 것은 1만 정에 불과해 있으나 마나 했다는 점이다. 반면 톰슨 기관총은 170만 정, MP40은 100만 정, PPSH-41은 600만 정이나 생산돼 전장을 주름잡았다. 100식 기관단총의 생산이 저조했던 이유는 당시 일본의 낮은 생산력에다 기관단총을 '총알만 낭비하는 무기'로 폄하한 일본 군부의 저열(低劣)한 의식 수준이었다.
더 웃기는 것은 100식 기관단총에 착검(着劍)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기관단총의 '정체성'에 대한 일본 군부의 절망적 무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기관단총은 근접전에서 적을 일거에 쓸어버리기 위한 무기이지 백병전을 위한 무기가 아니다. 착검은 총알이 떨어졌을 경우를 대비하려는 목적이라고 백번 양보해도 헛웃음이 나오는 것은 마찬가지다. 백병전에서 기관단총은 착검을 해도 힘을 쓸 수 없다. 총신이 짧아 적의 착검한 소총을 절대로 당해낼 수 없다.
이런 난센스의 뿌리는 일본 군부의 '정신주의'이다. 국력이 뒤지는 일본이 서구 열강과 대적하려면 정신력 말고는 길이 없다는 게 일본 군부의 생각이었다. 이는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연합군의 기관총 진지 앞으로 돌격하는 무모한 집단 자살로 나타났다. 이런 '백병주의'(白兵主義)의 기둥이 바로 총검술이었다. 일본군이 그렇게 총검술 훈련에 집착하고, 총검술에서는 연합군이 자신들을 대적할 수 없다고 자신했던 이유다. 그러나 시대는 이미 총검술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게 변해 있었다.
일본 아베 정권이 중학교 교육 과정 학습지도요령에 총검술을 선택 과목으로 넣었다. 총검술의 목적은 총검으로 적을 찔러 죽이는 것이다. 그런 살상 기술을 어린 학생에게 가르쳐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황군'(皇軍)을 재건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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