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로 걷다보면, 옛 성벽 자리 보여요
'흥'은 재미와 즐거움의 감탄사입니다. 신나는 레저 지면을 만들겠다는 다짐이기도합니다. 주인공은 독자 여러분입니다. 지역의 역사문화와 자연, 사람을 소개합니다. 새로운 접근과 재발견을 통해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기사를 만들겠습니다. 오직, 독자의 흥을 돋우겠습니다.
서성로-되살아난 한옥, 여전한 우리네 삶의 공간
남성로-백화점에 밀린 약령시, 외식업 자리 잡아
북성로-일제가 남긴 적산가옥, 박물관'갤러리로
봄에는 성글어진다. 땅이 그렇다. 겨우내 얼면서 부푼 흙이 녹으면서 틈을 만든다. 마음도 비슷하다. 날이 풀리고 꽃이 피면 봉곳하게 들뜬다. 움츠렸던 마음이 기지개를 켠다. '봄 앓이'의 시작이다. 봄철 풍습인 읍성 밟기가 생겨난 이유다. 성글어진 성곽을 밟으며 단단하게 다졌다. 해빙기 안전점검이었다. 마음을 다스리는 구실도 했다. 액운을 쫓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토속문화와 결합한 것. 지금은 사라진 대구읍성 자리를 걷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 읍성을 다지듯, 걸으며 도시의 봄을 맞이한다.
◆북성로-아물며 새살이 돋는 재생
쌀쌀하던 날씨가 정오에 풀렸다. 북성로로 갔다. 낮은 건물들이 햇볕을 받았다. 외벽과 창문 등 구석구석 낡은 흔적이 도드라졌다. 음각한 듯한 세월의 무늬였다. 볕은 1층 상가 입구 안까지 밀고 들어갔다. 상인들이 화물차에 물건을 오르내렸다. 배달 오토바이가 개미처럼 골목을 오갔다. 한쪽에선 절단기 소리가 요란했다. 불꽃이 튀었고, 쇠 냄새가 났다.
북성로라는 이름은 대구읍성의 흔적이다. 경상감영을 중심으로 사방을 둘러싼 읍성의 북쪽이고, 이를 허문 자리에 만든 길이다. 읍성의 전체 둘레가 2.7㎞. 북성로는 약 700m가량이다. 읍성은 1907년에 해체됐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번화가로 성장했고, 광복 이후 주둔한 미군부대의 폐공구를 모아 팔면서 공구골목이 형성됐다.
분위기는 드라마 세트장과 비슷했다. 키 작은 근대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일본인이 남긴 '적산가옥'이 수십 채에 이르렀다. 목욕탕과 백화점, 양복점, 식당, 여관 등 쓰임새마다 모양이 다양했다. 저녁이 되자 공구 상가가 문을 닫았고, 카페와 음식점이 불을 밝혔다. 옛 건물 모양 그대로를 살려 박물관과 갤러리, 공연장으로 쓰고 있다. 내린 셔터에는 벽화를 그렸다. 황실과 공구 등 여러 주제가 담겼다. 크고 화려하기보다 깊고 소담한 거리였다.
◆서성로-역사와 전통의 부활
서성로로 발길을 옮겼다. 곳곳이 시간을 복습하고 있었다. 역사를 읽는 터가 있고, 되살아난 한옥이 있었다. 북성로가 '아물며 새살이 돋는 재생'이라면, 서성로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환생'이었다.
시작은 우현서루(友弦書樓) 옛터. 현재 대구은행 북성로지점 자리다. 남쪽으로 200여m 떨어진 곳에 우현서루를 세운 이일우 선생 고택이 있었다. 막 발굴을 시작한 유적 같았다. 먼지가 쌓이고, 삭아서 거칠어진 나무 문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귀가 어둡고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집을 지켰다.
서성로를 걷는 기쁨은 한옥의 발견에 있다. 전시장이 아닌 삶의 공간으로서 한옥이었다. 서성네거리에서 180여m 떨어진 골목. 섬유회관에서 구암서원까지 이어진 길에 한옥이 되살아났다. 나무 대들보에 기와지붕을 얹었고, 낮은 담에 대나무를 심었다. 창살 형태를 살리며 유리창을 댔고, 그 덕분에 빛이 귀한 골목에서 밝은 실내 분위기를 냈다.
리모델링이 한창인 한옥도 있었다. 오는 4월 뜨개질 등 수공예 체험장으로 문을 열 예정이다. 대구의 실 생산업체 '리네아'가 마련한 공간이다. 하동기 리네아 대표는 "수공예 커뮤니티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라며 "수공예를 활성화하고 기업의 브랜드 가치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성로·동성로-역사와 현재의 교차
남성로는 구 제일교회와 구남YMCA 건물이 중심을 잡았다. 밤에 조명을 받은 붉은색 벽돌이 선명했다. 곁을 약령시한의약박물관이 지켰다. 350년이 넘는 약령시 역사가 전시돼 있었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읍성을 해체한 다음 해인 1908년 경상감영공원 인근에서 현재 남성로로 옮겼고, 이후 독립운동 자금조달 거점으로 지목돼 탄압을 받다 1941년 폐쇄됐다는 것.
남성로에선 일대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약령시로 대표되는 전통과 백화점을 앞세운 현재가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 특히 2013년 현대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약재상들이 밀려났다. 카페와 음식점, 미용실 등 외식산업이 자리 잡았다.
동성로를 걸을 땐 관찰력이 필요했다. 바닥에 옛 성벽자리를 나타내는 화강석이 있다. 옛 진동문 자리임을 알리는 표식은 건물 화단에 숨어 있었다. 빈 역사성을 채우려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높이(5m)가 비슷한 가로등을 보면서 읍성의 규모를 짐작했다.
이영숙 중구청 골목문화해설사는 "방어 목적으로 세운 대구읍성이 일제에 의해 헐린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데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며 "읍성은 단순히 옛날 유적이 아니라 그곳에 담긴 정신이 있고, 또 주변에서 살다간 인물들이 있어서 의미가 더 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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