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미국 대선에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재선을 낙관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벌어진 걸프전에서 압승을 거둔 터였다. 부시는 전승에 한껏 도취해 있었다. 재선은 따 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도전자인 빌 클린턴 후보는 달랐다. 부시가 이룬 전쟁 승리를 두고 다툴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대신 선거 사무실 벽에 "문제는 경제다, 어리석은 자여"(It is economy, stupid!)란 구호를 큼지막하게 내걸었다. 재선을 확신하는 부시를 뭉개고 자신을 차별화하는 승부수였다.
클린턴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경제'를 앞세운 클린턴이 '전공'(戰功)을 내세운 부시를 가볍게 눌렀다. 클린턴의 구호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는 경제 재건에 정치 생명을 걸었다. 그의 치하 재무부장관 로버트 루빈은 "최선의 정치는 경제"라 했다. 클린턴 정책의 핵심은 '강력한 민간 부문'과 '효율적인 정부'의 결합이었다. 그는 "민간과 정부가 갈등하면 경제 기반이 약해져 일자리가 늘지 않고 국가 경쟁력이 축소된다"고 믿었다. "큰 정부의 시대는 갔다"며 공무원 수를 30만 명 줄였다. 행동은 결실로 이어졌다. 취임 당시 6.5%에 이르던 실업률은 3%대로 떨어졌다. 두 번째 임기엔 흑자 재정을 달성했다. 공무원 수를 줄였음에도 재임 기간 일자리는 2천200만 개가 늘었다. 오늘날 그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뛰어난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데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최선의 정치는 경제'라는 화두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더 유효하다. 대한민국 역사상 탄핵 위기에 몰린 두 대통령이 모두 경제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점이 이를 웅변한다.
처음 탄핵심판대에 올랐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끝마다 부자를 비난했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했지만 그 시절 민생은 파탄 났다. 노 정부 첫해인 2003년 이후 2007년까지 하위 20%의 월평균 소득 증가율은 17.6%로 상위 20%의 소득 증가율 24.6%를 크게 밑돌았다. 빈부 격차가 확대된 것이다. 사오정(45세가 정년)이니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도 그때였다. 2002년 133조6천억원이던 국가 채무만 2007년 300조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뒤늦게 한미 FTA를 체결하는 등 경제 살리기에 나섰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성적표도 마찬가지다. 말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몇몇 수치만으로 확연하다.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8%로 역대 최고였다. 가계 부채 역시 1천344조원을 기록, 사상 최고다. '빚내서 집 사라'던 경제 정책 때문이다. 반면 GDP 성장률은 곤두박질 쳤다. 2015년 2.6%로 내려 앉은 후 3년 연속 2%대 저성장 늪에 빠져 있다. 성장률은 떨어지고 빚은 가파르게 늘어나는데 젊은이들은 갈 곳이 없다. 그러니 청와대가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영락없는 '헬 조선'이 맞다.
국민 이목은 이제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쏠려 있다. 당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그 복판에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그는 누가 봐도 차기 대통령 0순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촛불 광장에 나가 '촛불을 더 높이 더 많이 들라'고 외치고 있다.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는 정치인에겐 '분노가 없다'고 꾸짖는다. 나라 경제에 걱정을 읽기 어렵고 '정치'에만 치우쳐 있다. 그렇다 보니 가끔 내놓는 경제 공약은 하지하책이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로 김정은에게 달러 숨통을 터줄 계획은 있는데 우리 경제에 숨통을 틀 방법은 없다. 규제 개혁을 통해 강한 경제를 만들려는 의욕은 보이지 않고 촛불 민심에 기대 재벌 개혁을 강조하는 과욕은 보인다. 청년 일자리 대책으로 공무원 81만 명을 늘려 '큰 정부'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그저 기가 차다.
그가 바뀌든지 국민이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5년 후 그 역시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또 한 사람의 실패한 대통령을 가지는 것은 국가와 국민 모두에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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