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노숙인 겨울나기 4시간 르포] 칼바람 비닐움막살이…봄 오기만 기다려야 할 처지

입력 2017-01-20 04:55:02

도시철도역이나 터미널에서 노숙생활을 하지 않고 인적이 드문 산기슭이나 강가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 있다. 이들은 따뜻한 잠자리나 무료급식의 혜택에서 벗어나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지만,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다. 18일 대구 북구 칠곡 한 야산 노숙인 텐트를 찾은 사회복지사가 노숙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도시철도역이나 터미널에서 노숙생활을 하지 않고 인적이 드문 산기슭이나 강가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 있다. 이들은 따뜻한 잠자리나 무료급식의 혜택에서 벗어나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지만,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다. 18일 대구 북구 칠곡 한 야산 노숙인 텐트를 찾은 사회복지사가 노숙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한낮 기온마저 영하권을 넘나드는 강추위에도 밖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 있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노숙인 대부분은 지하철역 등 그나마 칼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옮겼지만, 일부는 혼자가 편하다는 이유로 차가운 거리에서 어서 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이렇게 강가나 산기슭 등 인적 드문 곳에서 지내는 노숙인은 대구에만 10여 명 남짓으로 추정된다. 18일 오후 7시 30분부터 4시간 동안 현장 점검에 나선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이하 센터) 관계자와 함께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오후 8시 북구 금호동 금호대교 밑

풀도 죽어버린 자리에 파란 비닐텐트가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사람의 주거지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그곳에 다가가 수차례 말을 걸자 희미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센터 직원이 얼굴 좀 보자고, 아픈 곳은 없는지 봐야겠다며 잠시 나와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만 돌아가슈"라는 말만 돌아왔다.

67세에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노숙인 A씨가 다리 밑에 자리 잡은 것은 7개월 전이다. 겨우 비바람을 막아 줄 텐트는 근처 비닐하우스 농가의 호의 덕분에 장만 할 수 있었다. A씨가 다리 벽에 기댄 채 아무것도 없이 웅크리고 자는 모습을 발견한 비닐하우스 주인이 비닐 일부를 떼어 내 텐트를 마련해줬다.

얼굴도 드러내지 않고 거듭 돌아가라는 말만 하던 A씨는 자녀가 없다고 했다. 대구에 연고도 없었다. 사연이 많을 듯한 그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A씨는 동사 위험이 있으니 따뜻한 센터에서 숙식을 해결하라는 센터 직원의 권유에도 일절 응하지 않았다. "얼어 죽지 않을 것이고, 밥도 알아서 해결할 수 있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결국 센터 직원은 A씨를 설득하지 못하고 컵라면과 초코파이 두 개, 두유 한 팩이 든 봉지만 내려놓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회복지사 신현종 씨는 "길거리까지 나앉게 된 사람들은 가족, 친구 등 사회적 연결망이 모두 끊겨버린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주변에 애정과 관심을 가진 연결고리가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후 9시 북구 매천동 태복산 기슭

매천로 옆 돌담을 넘어 200m 정도 산에 올라가자 어렴풋이 사람 사는 흔적이 보였다. 옆으로 난 큰 나뭇가지에 비닐 몇 장을 덧대놓은, 오두막은커녕 텐트라고도 부를 수 없을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와 바삐 지나다니는 차들이 묘한 위화감을 자아냈다.

당뇨로 소변줄을 차고 있는 B(72) 씨는 1년째 이곳에 살고 있다. 병세가 심해 한때 센터로 들어와 숙식을 해결하고 병원 치료를 받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몸이 조금 나아지자 완쾌도 되기 전에 종적을 감췄다.

B씨는 센터 직원이 가져온 간식을 한사코 거절했다. 다른 사람이 준 음식은 믿을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 B씨는 "누가 독이라도 탔을지 아느냐. 의심돼서 못 먹겠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버텼다. 세상과 단절돼 아예 마음의 문을 닫은 모습이었다.

결국 이번에도 센터 직원들은 B씨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사회복지사 신 씨는 "노숙인 중에서도 특히 멀리까지 나와 혼자 사는 사람들은 센터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데 거부감을 가진 경우가 많다. 춥고 배고프더라도 혼자 사는 게 편하다는 입장이라 설득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오후 10시 북구 동호동 하천가

40대 남성이 노숙 생활에 들어간 경우도 있었다. C(45) 씨의 보금자리는 북구 동호동에 위치한 대구도시철도공사 칠곡차량기지 앞 하천변이다. 센터 직원이 방문하자 C씨는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막 식빵을 굽던 중이었다. 계란도, 버터도 두르지 않은 그냥 빵에 열을 가하는 수준이지만 C씨의 경우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세상과 단절하고 혼자 사는 노숙인 대부분이 비닐 몇 장을 겹쳐 놓고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C씨 역시 센터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이렇게 지내다가 나이 오십이 되면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했다. 사회복지사 신 씨는 "노숙인이 되는 이유는 보통 가족 아니면 돈인데, C씨는 돈 문제로 길에 나앉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도 돈 때문에 이렇게까지 내몰린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날 대구 북구 인근과 동구 동대구역, 중구 시청 주변을 둘러보며 만난 노숙인은 10여 명이었다. 이 가운데 센터의 도움을 받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센터에 따르면 야간 점검을 나가도 이날처럼 아무도 데려오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센터 관계자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단체생활을 싫어하거나 그냥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을 수도 있겠죠. 그래도 동사 위험도 있는 만큼 잠깐이라도 따뜻한 곳에 머물러 주시면 정말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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