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영화 속 과학의 오류

입력 2017-01-20 04:55:02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한장 운영위원장.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한장 운영위원장.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재난영화 원전 안전성 관심 높여

가상 시나리오 불안감 증폭 우려

6.1 지진 대형사고 가능성 낮고

원자로 최악 경우에도 폭발 않아

지난 연말에 개봉한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가 흥행하면서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느낀다. 영화 자체는 가상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해서 제작됐다고 하지만,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원전 안전시스템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규모 6.1의 지진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원전인 한별 1호기 냉각재 밸브에 균열이 생기고, 정부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원자로 격납건물이 폭발하고 국민들이 방사능 공포에 휩싸이게 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영화 전개를 보면 감독은 아마 후쿠시마 사고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든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의 핵심원인인 규모 9.0의 대지진과 이에 따른 쓰나미는 등장하지 않는다. 위의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설정됐다면 과학자들도 영화 전개에 대해서 많은 부분 공감을 할 수 있으나 영화에서 나타난 규모 6.1의 지진과 쓰나미가 없는 전개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입장에서 공감대를 얻기 쉽지 않을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경우 규모 9.0의 대지진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쓰나미가 몰려오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원전의 경우 지진 발생이 감지되면 제어봉이 자동으로 작동해 핵분열 반응을 멈추게 한다. 그러나 핵연료는 여전히 고온 상태이므로 냉각수를 공급해 온도를 낮춰야 한다. 냉각수를 공급하려면 모터를 돌려야 하고 모터를 돌리려면 전기가 있어야 한다. 모터를 돌리지 못하면 핵연료의 온도는 점점 올라가서 피복관이 녹아내리게 되는데 이것이 중대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

후쿠시마에서는 대지진으로 송전탑이 쓰러져 전기 공급이 끊겼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원전 내 비상 디젤발전기를 설치해 대형사고를 막게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원전과는 달리 후쿠시마 원전의 비상 디젤발전기는 지하에 설치되어 있었고 쓰나미가 덮치면서 비상발전기를 침수시켜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지진 발생이 곧 대형 원전사고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인과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처럼 규모 6.1의 지진에서 중대사고가 일어날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낮다. 우리나라 원전은 규모 6.5(0.2g), 7.0(0.3g)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으며, 특히 중요 구조물은 규모 7.2(0.4g)에도 견디도록 설계되어 있다. 지진은 규모가 1.0 증가할 때마다 강도가 32배 커지므로 규모 9.0의 지진은 규모 6.1의 지진보다 약 2만9천 배 큰 강도이다.

영화에서 보면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격납건물이 달걀 깨지듯이 깨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에 최악의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격납건물은 영화에서처럼 폭발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원전의 격납건물은 65~120㎝의 매우 두꺼운 구조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만약 대량의 수소가 발생하더라도 격납건물이 폭발하기 전에 수소 가스를 배기해 압력이 낮아지도록 설계돼 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는 사용 후 핵연료 저장조의 폭발을 막기 위해 작업자들이 고군분투하고 저장조 바닥을 임의로 폭파해 대형사고를 막는 상황이 전개되는데 우리나라 원전의 경우, 암반 위에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그 위에 저장조를 건설하기 때문에 저장조 하부에 공간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저장조 하부를 인위적으로 폭파할 경우 오히려 사용 후 핵연료를 파괴할 가능성이 커지므로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기술적 오류를 바로잡아 불필요한 오해를 막고자 설명을 했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원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인 것을 이해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원전의 안전성을 더욱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국민에게 신뢰를 받는 원자력이 되길 바란다. 최근 필자는 사용 후 핵연료 및 방사성폐기물 현안으로 지역주민, 언론 관계자를 자주 접촉하면서 과학자가 생각하는 안전과 일반 시민이 생각하는 안전의 온도 차가 매우 큰 것을 느끼게 됐다. 이는 결국 소통의 부족에서 기인됐다고 생각한다. 국민과 함께하는 원자력을 만들기 위해 주민과 소통하려는 노력,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확보하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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