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청년농업] '農者天下地大本' 4차 산업혁명시대 청년 실업 해결할 훌륭한 대안

입력 2017-01-02 04:55:01

<1>억대 소득 농부

박동우 씨
박동우 씨
박영현 씨
박영현 씨

농업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청년·도시 농부가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 역설적으로 1차 산업에 몸을 던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매일신문 기자들은 '엉뚱한 사람들'을 찾아나섰다. 그들은 "21세기, 농업만큼 희망적인 산업은 없다"고 단언했다.

◆3대째 사과 농사로 영농인 롤모델 된 영덕 박동우 씨

"새마을 모자에 검게 그을리고 남루한 작업복 차림의 농사꾼 이미지를 없애고 싶습니다."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서 할아버지'아버지에 이어 3대째 사과 농사로 억대 소득을 올리고 있는 청년 농업인 박동우(33'전 4H 경북도연합회 회장) 씨. 억대 부농답게 그는 말쑥한 양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고교 시절 종합고등학교 농과를 다니면서도 부모님이 하시는 농사일을 제가 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대학 진학을 하면서 선생님과 아버지의 권유로 한국농업전문학교(한국농수산대학) 과수과에 입학하면서 농업인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농업인이 되겠다는 마음을 확실히 굳힌 것은 대학교 2학년 때 영주의 한 과수농 할아버지의 농장에서 받은 과수실습 교육에서였다.

"당시 그 농장 할아버지는 저희 집도 과수를 한다는 것을 아시고 사과값을 물으셨습니다. 제 기억으로 당시 저희 집에선 10㎏ 한 상자에 2만5천원 정도 받고 있었죠. 그런데 할아버지는 5만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비결은 고품질 사과였습니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사과나무에다 좋다는 보약을 다 먹인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충격을 받았다. 사과 농사에 인생을 걸기로 마음을 먹었다. 과수농 할아버지의 혹독한 교육과정도 견뎠다. 대학을 다니면서 평소 기계 만지는 데 관심이 있었던 터라 농사일에 필요한 장비와 관련 자격증을 모조리 다 따면서 본격적인 과수농사를 차근차근 준비했다.

"농기계와 농사에 필요한 장비를 자유자재로 다루니까 노동력과 비용을 아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풀 베는 장비를 제가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죠. 장비에 대해 잘 아니까 농기계를 살 때도 훨씬 싸게 살 수 있었습니다. 주위의 영농인들이 장비를 구매하거나 수리할 땐 저를 찾습니다."

박 씨의 또 다른 호칭은 박 회장이다. 10여 년 전 고향에서 아버지와 함께 과수농사를 시작하면서 가입한 청년농업인 단체인 4H의 경북도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4H 활동을 통해 선배 농업인들로부터 경험과 노하우를 배우고 후배 농업인들에게는 이를 전해주는 보람이 있었다. 그 때문에 농업인으로서의 자긍심이 높다. 그러다 보니 보다 스마트한 농업인이 되기 위해 공부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사실 아버지가 처음에는 말렸습니다. 농사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농수산대학교 심화과정을 거쳐 경북대학교 대학원 생명융합과정도 수료했습니다. 사실 영덕에만 있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십상입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식견도 넓어지고 생산과 유통 등에 대한 새로운 비전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는 예전의 부모 세대처럼 농업에만 골몰하지 않는다. 젊은 세대답게 바다에서는 수상모터사이클을 타고, 레저용 경량 항공기를 배우기도 했다. 일할 땐 열심히 일하고 여가를 즐기는 데도 인색하지 않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만난 여자 친구와 내년에 결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자 친구 부모님께서 처음엔 걱정을 하셨는데 제가 직접 가서 저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인사했더니 흔쾌히 승낙해 주셨습니다. 신혼집도 영해에 마련했고 여자 친구는 영덕에 일자리를 구하고 있습니다."

박 씨는 또 다른 농업인단체 총회를 위해 자리를 떠나면서 "농업은 청년실업 해결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농업법인·복숭아 잼 공장 경영하는 청도 박영현 씨

"농촌 주변을 잘 살펴보면 젊은이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널려 있습니다."

시원시원한 성격에 듬직한 체구의 청년 농업인 박영현(36) 씨. 곧 결혼까지 앞두고 있는 그는 하루 24시간을 쪼개도 바쁘기만 한 청년 억대 부농이다.

박 씨는 1인 5역 이상의 멀티 농업인이다. 지난해 농업법인을 만들면서 설립한 복숭아 수제 병조림·잼 공장, 축산, 머위 나물 하우스, 사료대리점, 커피숍 등 일단 판을 벌이고 보는 스타일 때문이다.

4남매의 막내인 그는 고향 청도 풍각면에서 고교 시절부터 아버지의 복숭아밭 농사일을 거들었다. 대학을 중퇴한 그는 20대 후반 무렵, 농사와 유통 분야에 뛰어들어 이제는 1억5천만원대의 소득을 올리는 농업인으로 우뚝 섰다.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들을 병원까지 모셔다 주는 등 착한 심성까지 더해져 동네에서는 어느새 '누구 집 아들이 아니라 영현이집 누구'가 됐다며 웃음 지었다.

20대 초반에는 공부를 하지 않는 아들을 아버지는 마뜩찮아 했다. 아버지는 용돈을 주지 않으며 강하게 몰아붙였다고 한다. 용돈 벌이를 위해 막노동, 소 트럭 운반 등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몸을 부려야 했다.

"집에서 소나 키우자 싶었죠. 그런데 축사를 관리하다 보니 볏짚에 눈이 갔죠. 전국 소 사육 농가의 40%가 몰려 있는 경북에 볏짚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고, 곡창지대 전라도 볏짚을 트럭에 실어다 납품하는 볏짚장사부터 시작해 농사 재미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소를 키우며 볏짚장사를 하다 보니 이번엔 가축 사료에 눈길이 갔다. 곧바로 사료대리점을 내고 운영했다. 예전 할머니가 키우던 머위 나물에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할머니는 봄 새싹이 나올 때 미각을 키우는 나물로 양반들만 먹던 부자음식이라고 했다. 알음알음 살펴보니 요즘도 동네 할머니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소득 작목이었다.

그는 머위 출하시기를 앞당기고, 인근 명소 한재 미나리와 접목방법을 생각해냈다. 머위 하우스를 시작하고, 한재의 식당에 쌈 채소로 머위를 납품했다. 물론 동네 할머니들이 생산한 머위까지 같이 팔아줬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머위 종근(뿌리)을 판매하고, 장아찌로 머위 찌를 생산해 납품할 예정이다.

지난해 선후배들과 의기투합해 '농업법인 한가득'을 설립하고, 수제 복숭아 병조림과 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예전 할머니가 집에서 만들어주던 맛을 내려고 제조 공정 연구에 몰입했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4H연합 활동을 같이하던 영덕의 후배에게 제품 공정을 배웠지만, 살균온도와 물, 진공포장 잡기가 서로 달랐다. 수천만원을 날린 끝에 공정을 완성하고, 추석 선물용으로 4천만원 정도를 판매했다.

"복숭아 병조림은 생과 판매보다 부가가치가 큽니다. 중국산 통조림이 판치는 가운데 눈으로 확인 가능한 안전한 먹을거리여서 대량생산으로 갈지 고민 중입니다."

그는 고교 졸업 이후 가입한 4H연합회 활동을 기반으로 경북농민사관학교 조사료, 로컬 푸드 과정을 이수하고, 경북씨앗포럼 등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여러 사람을 만나 교류하면 사고의 범위와 일의 접근방식이 달라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제가 하는 일들은 모두 시골에서 예전부터 있던 것들이죠.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할 뿐입니다. 젊은 사람이 농촌에서 소득을 올리며 도전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렸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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