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골목길 도시다 2] <1>간판 자국①

입력 2017-01-02 04:55:01

동성로·북성로 곳곳 추억의 간판 '과거로 접속 통로'

대구 도심 골목길 곳곳에서 발견된 대구읍성 성돌 매일신문 DB
대구 도심 골목길 곳곳에서 발견된 대구읍성 성돌 매일신문 DB
가게는 사라져도 종종 간판은 남긴다. 그래서 간판 자국을 몸에 새긴 오래된 건물들은 골목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며 기록하는 사관(史官) 같다. 대구 태평로의 한 빈 건물 황희진 기자
가게는 사라져도 종종 간판은 남긴다. 그래서 간판 자국을 몸에 새긴 오래된 건물들은 골목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며 기록하는 사관(史官) 같다. 대구 태평로의 한 빈 건물 황희진 기자
20세기 대구 중앙로 서점 골목을 형성한 본영당서점의 간판 자국
20세기 대구 중앙로 서점 골목을 형성한 본영당서점의 간판 자국
1997년 대구 최초의 복합상영관으로 개관하며 대구 극장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지만 2007년 폐업한 중앙시네마의 간판 자국
1997년 대구 최초의 복합상영관으로 개관하며 대구 극장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지만 2007년 폐업한 중앙시네마의 간판 자국

보이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 골목길에는 말이다.

예컨대 대구읍성은 돌과 돌과 돌, 그러니까 '성돌'들의 조합체로 있다가 사라져(친일 관료 박중양이 1906년 무너뜨렸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동성로(대구읍성의 동쪽)나 북성로(북쪽) 같은 명칭으로 지금 대구읍성은 보이지는 않지만 대구 사람들의 인식 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경계쯤에 있는 매개체가 바로 대구 도심 골목길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성돌들일 것이다. 분명 돌이라는 모습으로 '보여지는' 대구읍성의 일부이면서, 이제는 사라져 '보이지 않는' 대구읍성의 흔적이기도 하다.

◆시간여행 접속 통로, 간판 자국

그런 '경계성'을 지닌 것이 또 있다. 역시 골목길에 있는 '간판 자국'이다. 이걸 매개로 지금은 사라진, 그래서 '보이지 않는' 가게를 '볼 수' 있다.

취재를 하며 자의적으로 설정한 간판 자국의 개념은 이렇다. ▷가게는 사라졌는데 간판을 철거하지 않아 그대로 남은 것 ▷가게가 폐업하거나 이전할 때 간판도 뗐지만 기술적 문제로 간판의 일부나 흔적이 남은 것 ▷가게는 그대로 있으나 새 간판을 달 때 옛 간판을 없애지 않고 놔둔 것 등이다.

간판 자국은 번화가와 그 배후 뒷골목에 가서 고개를 하늘을 향해 들고 다시 360도로 회전시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런 공간에서는 꽤 자주 제법 빨리 이런저런 가게가 들어섰다 사라지고 다시 들어서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대구에서는 동성로가 대표적인 곳이다. 결국 간판 자국의 수명은 대체로 짧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버려져 있었던 덕분에 꽤 오랫동안 남게 된 간판 자국을 대구 도심 골목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구 도심 골목길에서 수많은 간판 자국을 찾았는데, 그중 시대의 변화상을 엿보게 해주는 간판 자국 2개를 소개한다. 대형 서점이라는 대세에 밀려 사라진 '본영당서점'과 역시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체인이 등장하며 사라진 '중앙시네마'의 간판 자국이다.

◆대구 향토 서점, 본영당서점

본영당서점은 20세기에 펼쳐진 대구 토박이 서점 역사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본영당서점은 대구 중앙로를 한때 서점 골목으로 만든 곳이다. 1945년 본영당서점이 문을 연 이래 청운서림, 학원서림, 대구서적, 제일서적, 태극도서, 분도서점, 하늘북서점, 대우서적 등 향토 서점들이 중앙로에 들어섰다. 중앙로는 대구에서 책 사러 가는 곳이자 젊은이들의 주요 약속 장소였다. 이게 20세기까지의 얘기다.

2000년대 들어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등 대형 서점 브랜드가 대구에 진출하고 인터넷 서점 시장도 커지면서 중앙로 서점 골목은 모습을 잃기 시작했다. 토종 서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는 가운데 규모로 봤을 때 대구 서점계의 간판 격이었던 제일서적이 2006년 부도 처리되며 큰 충격을 줬다. 중앙로를 마지막까지 지킨 서점은 2007년 폐업한 대우서적이다. 본영당서점은 수성구 대구MBC 건물로 이전했다가 2008년 영업을 종료했다. 그 자리에 역시 중앙로에 함께 있었던 학원서림이 이전했다가 다시 사라졌고, 현재 에스북 서점이 들어서 있다.

지난달 말 서울의 전통 있는 서점인 종로서적이 2002년 폐업한 지 14년 만에 다시 문을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904년 개점해 100년이 조금 안 되는 세월 동안 서울 종로의 랜드마크 역할을 맡았던 종로서적이 고향 종로로 '컴백'한다는 뉴스가 여러 신문과 방송에 떴다. 종로서적은 이제 몇 년만 더 채우면 100년 역사를 완성할 수 있게 됐다. 혹시나 대구 도심에도 토종 서점이 다시 개업하는 현상을 볼 수 있을까. 아무튼 중앙로에는 마치 서예 작품 같은 매력을 풍기는 검은색 글씨의 본영당서점 간판 자국이 훼손되지 않은 채 전성기 때 모습 그대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

◆기억도 희미해진 중앙시네마

중앙시네마는 1997년 대구 최초의 복합상영관 개관이라는 기록을 썼다. 1907년 세워진 대구 최초의 극장 금좌(니시키좌). 1922년 문을 연 대구 최초의 조선인 자본 극장 만경관. 1938년 키네마구락부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가 한국전쟁 때 3년간 국립중앙극장으로 쓰이고 1957년 개인에게 인수돼 대구 사람 누구나 아는 이름을 얻은 한일극장 등과 함께 대구 영화관 역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다만 2007년 폐업 후 건물은 그대로 남아 있기에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떼지 않은 간판뿐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앙시네마 건물 1층 처마에는 'NOW SHOWING'(상영 중)이라는 글자형 간판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철거됐다. 또 건물 윗부분에 부착돼 있는 '중앙시네마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낡고 해지며 떨어져나가고 있다. 그 위에 종종 대형 광고물이 붙어 아예 문구를 가리기도 한다. 대구 사람들의 기억 내지는 추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대구 도심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당연한 얘기겠지만 더 오래된 건물에서 더 오래된 간판 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간판 자국의 방점은 '보존'이 아니라 '방치'에 찍힌다. 그냥 놔뒀더니 지금껏 풍파를 견디며 건물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가게가 끊임없이 들어서고 나가기를 반복하며 간판도 그만큼 자주 교체돼 온 동성로'중앙로 같은 신도심과 비교해, 간판 교체가 잦지 않은 구도심인 북성로'향촌동'포정동'교동'종로 등에서는 더욱 시간을 묵힌 간판 자국들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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