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명장이다] <1>도자기 명장 백산 김정옥 씨

입력 2017-01-02 04:55:01

"전기 물레엔 혼을 담을 수 없지…" 칠순 넘어도 고된 발물레 고집

도자기 명장 백산 김정옥 선생이 망댕이가마에서 구워낸 찻사발을 살펴보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도자기 명장 백산 김정옥 선생이 망댕이가마에서 구워낸 찻사발을 살펴보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아버지와 아들, 손자 등 3대 도공이 발물레 앞에 섰다. 왼쪽부터 백산 선생, 아들 경식 씨, 손자 지훈 씨.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아버지와 아들, 손자 등 3대 도공이 발물레 앞에 섰다. 왼쪽부터 백산 선생, 아들 경식 씨, 손자 지훈 씨.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특정 분야에서 기술이나 실력'재주 등이 매우 뛰어난 사람을 장인(匠人), 거장(巨匠), 대가(大家), 달인(達人), 명인(名人)이라고 한다. 기술 하나로 대한민국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이 있다. '대한민국 명장'이 바로 그들이다. 1986년(용접 직종) 시작해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 명장은 올해까지 기계'전기전자'공예 등 22개 분야 96개 직종에서 616명이 선정됐다. 대구(47명)'경북(41명)에서는 88명이 명장에 선정됐다. 지역의 대한민국 명장을 소개한다.

◆도자기 명장 김정옥 씨

7대째 도자 가문을 잇고 있는 백산(白山) 김정옥(75) 선생, 백산 선생은 오늘도 '영남요'(문경시 문경읍 진안리)에서 전통 방식의 발물레를 돌리며 장인의 예술혼을 꽃피우고 있다. 1991년 정호다완을 재현해 도예 부문 초대 명장이 된 그는 1996년 국내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으로 지정됐다.

◇망댕이가마'발물레 고집

백산 선생은 250여 년 전 조상이 그러했던 것처럼 발로 물레를 차며 그릇을 빚고, 문양을 새기고, 그림을 그리고, 망댕이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워낸다. 망댕이가마는 마치 누에가 엎드려 있는 것처럼 길다. 약 12도의 경사를 이루며 조금씩 커진 가마 여섯 개가 붙어 있다. 우리나라 특유의 칸 가마로 20~25㎝의 굵기의 사람 장딴지 모양과 비슷한 진흙덩이(망댕이)와 흙벽돌을 사용해 만든 가마이다. 각 칸의 연결 부위에 통풍 장치인 살창구멍이 나 있다. 망댕이가마는 1천℃ 이상 올라가는 고열에도 오래 견딜 수 있고, 불길의 흐름도 부드럽게 해준다.

백산 선생이 망댕이가마를 고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통을 깨지 않기 위한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일반 가마와 달리 1천300도가 넘는 망댕이가마에서 구워낸 도자기는 빛깔이 곱고 성질이 단단하며 견고함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백산 선생은 한평생 고집스러운 삶으로 장인의 길을 걸어왔다. 쓸쓸하고도 외로웠지만 절대로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다. 작품에 대한 고집도 대단하다. 한 치의 오차나 흠집도 용납하지 않는다. 미완성의 작품은 가차 없이 폐기한다. 이 때문에 한 번 가마에 불을 때면 150~200개 정도의 작품을 넣지만 완성품의 비율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하나도 건지지 못한 때도 있다. "많은 작품보다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전기 물레와 전기 가마로는 쉽게 작품을 만들 수 있지만 만든 이의 혼과 정성은 담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작품 속에 담긴 '한국의 미'

백산 선생의 작품은 순수한 전통적인 기법을 이은, 소박하면서도 투박한 정감이 배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7대째 내려오는 도예 가문의 비법은 간결한 곡선에 있다. 그가 제작한 도자기는 가마에서 나오는 순간 수백 년이 된 것 같은 색감을 띠고 있다. 투박하면서도 고고함이 한껏 녹아 있는 그의 작품은 무엇보다도 꾸밈이 없는 자연미와 청결함을 유지하고 있어 최고의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가문의 전승을 충실히 재현한 청화백자와 살굿빛이 감도는 분청사기 정호다완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청화백자에서는 소박하면서도 고고한 멋을 느낄 수 있고, 정호다완에서는 정갈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찻사발에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과 문화, 정신이 깃들어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투박함 속에 묻어나는 자연스러움이 한국의 미를 담고 있다. 고요함과 평안함에서 묻어나오는 정중동의 맛이 순박한 우리네 감정을 담아내기도 한다.

◇칠순 넘었지만 "아직도 현역"

백산 선생은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아직도 물레를 힘차게 발로 차며 그릇을 빚고 있다. 오전 9시면 어김없이 작업실로 출근해 오후 6시까지 꼬박 작품활동에 몰두한다. "만족하면 끝이에요. 체력이 달리기도 하지만 조금 쉬고 나면 아직은 문제 없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나도 도공으로 살겠다는 그는 자신의 도예 인생의 버팀목은 '자긍심'이었다고 강조했다. "시름에 젖은 이에겐 술사발로, 아픈 이에겐 약사발로, 마음을 닦는 이에겐 찻사발로, 제가 만든 그릇이 그들의 삶을 채우고 보듬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산 선생은 이어 "이제 남은 꿈은 세계에 한국 도자기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이라며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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