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의 문학노트] 고정희의 '화육제 별사'②

입력 2016-12-31 04:55:11

내 길과 결혼하지 못했다

고정희의 '화육제 별사'②

일주일간의 단식을 끝낸 아침/ 공복으로 바라보는 수유리의 부신 햇빛이나/ 학장 공관 유리벽 속에서 타오르는/ 그 무시무시한 태양 앞에서도/ 현상과 인식은 화해하지 못했다/ 꿈의 절벽은 극복되지 못했다/ 나는 보았고 알았고 깨달았지만/ 결코 내 길과 결혼하지 못했다/ 나는 결혼하지 않았으므로/ '불임'의 고독을 상흔처럼 지녀야 했다 (고정희의 '화육제 별사' 부분)

업무차 제법 멀리 한국교원대학교에 들렀다. 평일인데도 인적이 드물다. 아직 방학은 아닌데 젊은이들은 전부 어디에 숨어 있을까? 1980년대 젊음으로 풍성하던 대학 캠퍼스, 2017년 캠퍼스 풍경은 오히려 스산했다. 꿈보다는 현실이 젊음을 잡아먹어 버린 현재가 거기에 있었다. 연수원 건물로 들어가는 길을 걷는데 불현듯 스무 살 청년으로 되돌아갔다. 돌아가고 싶은 풍경이지만 돌아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섣부른, 설익은 그래서 때 묻지 않은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대학 캠퍼스는 나에게 '불임'의 고통을 지닌 상징적인 공간이다. 영원히 학문에 코를 박고 살아갈 것 같았지만 현실의 논리에 의해, 꿈의 절벽으로 인해 포기한 공간이다. 여전히 캠퍼스는 나에게 애증의 공간이다.

나는 시를 사랑했다. 시를 통해 내 슬픔을, 기쁨을, 상처를, 그리고 희망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시를 쓰지 못했다. 고정희를 알게 된 그 즈음부터였을 게다. 시를 사랑하긴 했지만 시에 대한 사랑이 시를 쓰는 삶을 도와주진 못했다. 나를 둘러싼 현실과 인식은 결국 화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살고자 했지만 저렇게 사는 경우가 허다했고, 저리로 가려고 했지만 이리로 갈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내 길과 결혼하지 못했다.' 가슴에 담겨진 말들이 세상으로 나갈 때는 언제나 다른 언어로 드러났고, 쓰레기가 되어버린 생각들만이 내 영혼의 휴지통에 쌓였다. 나는 '보았고 알았고 깨달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말 그대로 생각의 '불임', 삶의 구체성이란 어느 소설가의 표현처럼 삶의 구체성은 언제나 나를 억압했다. 거대담론이 무너진 시대에 남은 건 작은 담론들이 아니라 담론의 부재였다. 돈이 전부인 시대라고 하더라도 돈이 시대정신이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2016년이 역사 속으로 떠나려는 현재, 우리는 그 현상을 똑똑하게 목도하고 있다.

화육제(化肉祭)는 한신대 축제 이름이다. 지금은 한국신학대학원으로 바뀐 서울 수유리의 1980년대를 고정희는 기록했다. 80년대를, 그 시대의 아픔을, 그리고 그 열정을 시로 남겼는데 이제는 지나간 내 일기처럼 자리 잡았다. 바람이 남긴 파편에 움츠리고 앉은 내 그림자가 흔들리면서 고정희의 언어를 한 단어마다 씹었다. 나도 무언가를 말해야 하는데 내 언어는 항상 거기에서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시작도 하지 못한 언어의 날개는 저만치에서 살랑거리다가 다시 지상으로 추락했다. 진실의 가장자리에서만 맴돌다가 머리카락만 만지작거리는 것이 내 언어의 본질이다. 그러고는 다시 나에게로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쓸쓸했다.(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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