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누군가에는 이르고 누군가에게는 늦은 시간이다. 어릴 적 부모님이 새벽기도를 나서며 문을 '삐걱' 열던, 그 소리에 어렴풋이 깨어 보면 시곗바늘이 향해 있곤 하던 그 시간. 어른이 된 아이는 그 시간에 새벽기도를 가기 위해 깨어나지는 못하고, 반대로 밤샘으로 그 시간까지 깨어 있는 일이 종종 있다.
밤샘을 하다 보면 보통은 새벽 두세 시가 고비인데 아무래도 밖에 나가기 애매한 시간이라 그냥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곤 한다. 문을 걸어 잠근 박물관 2층 테라스에서 밖을 내다보면, 길고양이들이 담벼락과 지붕 위를 유유히 활보하며 다니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고물상에 옮겨놓는 넝마주이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분명 어딘가에 있었을 텐데, 낮 동안은 눈에 띄지 않던 이들이 존재감을 발한다.
새벽은 그런 시간이다. 낮과 밤의 동선이 교차하면서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차원이 슬며시 열리는 듯한. 무언가 다가오면서, 지나간 것이 희석되는, 그래서 어제인지 오늘인지 헷갈리는 미로 같은 시간. 거기서 우리를 이끄는 유일한 지표는 꾸준하고 정확한 어떤 일상의 약속들이다. 예를 들면 새벽시장 같은.
달성공원 앞, 과거에 '삼공오번지'라 불리던 복개도로 위로 두어 시간 동안 펼쳐지는 장에 가 본 적이 있는지? 새벽 5시, 각종 먹거리와 막걸리까지 준비된 테이블에서 누군가는 막일을 나가기 전 이른 아침을 먹기도 하고, 바닥에 펼쳐놓은 채소바구니 사이를 오가며 누군가는 하루의 찬거리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디서 나타났나 싶은 풍선 실은 리어카가 길 한가운데로 지나가기도 한다.
누구보다도 빨리 아침을 시작하는 이곳의 사람들을 보노라면, 어쩐지 시간의 구분이 명료해지는 느낌이 든다. 반쯤 잠에 취해 좀비 상태로,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장을 봐 집에 오기도 한다. 깻잎 1천원어치, 오이 2천원어치. 뭐라도 해 먹으리라 다짐하며 사 놓은 야채들은 물론 냉장고 밖 구경도 못한 채 세상과 하직하기 일쑤지만, 부지런한 사람들 대열에 올라탄 느낌이 들어 시장 구경은 그 자체로 즐겁다.
이렇게 새벽을 담고 귀가를 하면 피곤하지만, 무척이나 풍족한 느낌이 든다. 미로를 헤매다 출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안도감이 들면서도, 그 미로에 언제라도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설레기도 한다. 이렇게 새벽에 대한 낭만적 감상과 현실적 감각 사이를 오가면서 양가적 감정을 느끼는 것이 어쩐지 이중적인 것 같다가도, 이게 나라는 인간의 모습인가 싶기도 하다.
그만큼 새벽은 모든 게 용인되는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호한 시간이자, 기도의 시간이며, 잠의 시간이고, 시작과 끝의 시간인 새벽. 우리는 아직 이 새벽에 대해 충분히 사유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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