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철학의 빈곤

입력 2016-12-27 04:55:09

"사회? 그런 것은 없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유명한 말이다. 이 말은 대처가 1987년 한 잡지와의 대담에서 한 말로, 그를 '악랄한 마녀' '쓰레기'라고 욕한 영국 좌파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지독한 개인주의, 사회철학에 대한 무지, 새로운 사업가 세대의 배금주의에 대한 찬양 등을 압축해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는 완전한 오독(誤讀)이다. 대처가 이 말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뜻은 그런 게 아니었다. '사회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사회는 국가와 동일하지 않다. 사회는 서로 자유롭게 제휴하고 이익공동체를 형성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이익공동체를 통제'규제할 권한이 없다'는 의미였다. 줄여서 말하자면 개인의 삶은 각자의 몫이며, 타인이나 국가가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좌파의 생각과 대척점을 이룬다. 당시 영국 좌파의 '국가상(像)'은 다른 국가의 동료와 마찬가지로 '사회 전체의 부를 필요한 부문으로 분배하고, 항상 국민을 가난과 질병, 실업으로부터 지켜주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이런 생각이 나쁠 것은 없다. 문제는 국가가 나눠주는 사회적 부가 어떻게 생겨나느냐 하는 '부의 창출'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저 정부는 부를 나눠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검증되지 않은 믿음뿐이다.

대처의 말은 이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많은 어린이들에게 잘못 가르쳤다고 생각합니다. '내 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줘야 한다' '내게 문제가 있지만 정부를 찾아가면 경제적 지원을 해줄 것이다' '나는 집이 없다. 정부가 집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식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사회에 전가하고 있어요."

새누리당 탈당파가 추진하는 '개혁보수신당'이 내년 1월 24일 공식 출범한다. '개혁적 보수'를 내걸었지만, 거기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는 아직 안갯속이다. 이와 관련해 정강 정책 마련을 주도하고 있는 유승민 의원은 "대북정책은 정통 보수로 가되, 경제'교육·복지·노동은 새누리당보다 훨씬 개혁적으로 가고 싶다"고 기본 방향을 밝혔다. 여기서 '개혁적'이 무슨 뜻인지는 짐작이 간다. 분배 확대일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다음이 문제다. 무슨 돈으로 분배를 늘릴지는 말이 없다. 무엇이 보수인지에 대한 철학의 빈곤이다. 불변의 진리는 아니겠지만 대처의 철학을 곰곰이 음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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