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은혜를 갚다

입력 2016-12-26 04:55:02

사립학교 채용 비리에 관한 뉴스가 나올 때면 씁쓸해지는 것이 비리와 상관없는 교사들도 '넌 얼마 주고 들어갔니?' 하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는 것이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한다는 것은 도덕적, 지적 권위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배울 점이 없는 사람이다. 배울 점이 없는 사람에게 배운다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된다. 학교에서는 도덕적, 지적 권위가 없는 사람이 교사가 되는 것도 문제고, 다수의 교사들이 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채용을 대가로 돈을 주고받는 것은 범죄행위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법적으로 걸리지 않지만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은혜'(恩惠)를 주고받는 것이다. 학교의 관리자가 비리를 저질렀을 때 어떤 선생님은 비리를 바로잡으려 하기보다 묵인하고 은폐하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면 자기가 정교사 될 때 관리자의 은혜를 입었기에 배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럴 때 "그러니까 너는 그 사람의 은혜 때문에 너보다 실력이 있는 사람을 제치고 정교사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단 말이지?"라고 물으면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이런 질문은 계파 보스의 은혜로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도 똑같은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자기가 입었다고 생각하는 은혜는 엄밀하게 말하면 은혜가 아니다. 은혜의 사전적 의미는 '고맙게 베풀어주는 신세나 혜택'이다. 이 말은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베푸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무 조건 없이 주는 것이다. 자식에게 언제까지 이자 쳐서 갚으라고 하지 않는 것이 부모님의 은혜이다. 그래서 은혜의 의미는 확장되어 하느님이나 부처님의 은총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조건이 있거나 꼭 돌려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것은 은혜가 아니라 '빚'이다.

은혜와 빚은 모두 '갚다'라고 하지만 갚는 방법은 매우 다르다. 빚을 갚는 방법은 빌린 만큼 도로 돌려주면 된다. 받은 혜택과 같은 혜택을 돌려주거나 비슷한 것을 환산해서 주면 된다. 그러나 부모님 은혜는 그런 방법으로는 갚을 수 없다. 대신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서 부모님 욕되게 하지 않고, 부모님이 뿌듯하게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은혜를 갚는 길이다. 사회가 공정하다면 교사에게 은인은 기회를 준 학교이고, 은혜를 갚는 길은 눈치 보지 않고 오로지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다. 국회의원에게 은인은 뽑아 준 유권자들이고, 유권자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게 은혜를 갚는 길이다. 지역구 주민들의 입에서 우리 지역 국회의원이 부끄럽다는 말이 나온다면, 그것이야말로 배은망덕(背恩忘德), 배신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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