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때 남편 루이 16세를 뒤따라 처형당한 마리 앙투아네트는 당시 프랑스 혁명 세력의 '증오의 아이콘'이었다. 그가 기근으로 빵값이 올라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한다는 말을 듣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했다는 유언비어는 그가 얼마나 프랑스 민중에게 '미운털'이 박혔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말은 혁명이 일어나기 훨씬 전인 1766년에서 1770년 사이에 쓰인 루소의 '고백록'에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루소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한 공주가 굶주린 사람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루소가 이 얘기를 기술할 당시 그는 아직 어린아이로, 루이 16세에게 시집오기 훨씬 전이었다. 그러나 혁명이 일어난 1789년 프랑스 사람들은 이 말을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그는 단두대에 오르기 전까지 당시 프랑스 법률이 정해놓은 모든 재판 절차를 거쳤다. 재판은 공정하게 진행됐다. 변호인 선임이 허용됐고, 또 판결에 '계급적 증오'가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배심원도 귀족, 외과의사, 상인, 음악가, 인쇄업자, 가발제조업자, 전 사제, 목수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로 구성됐다. 심리도 무려 12시간이나 걸릴 정도로 진통을 거듭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배심원단은 전원 일치로 사형 평결을 내렸다.
당시 프랑스를 휩쓸고 있던 혁명의 열기를 감안할 때 재판이 그의 목숨을 살려주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랬다면 그에게 조금이라도 호의적인 의견을 낸 재판 참여자는 '혁명의 배반자'로 찍혀 목숨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렸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재판은 법률이 보장하는 모든 과정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이미 사형으로 결론을 내려놓고 진행한 '형식적' 절차였던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을 맡은 헌법재판소가 야당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의 탄핵 가결을 무조건 '인용'하라 한데 이어 국민의당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은 헌재가 탄핵 사유 13건 모두를 심리하겠다고 하자 "헌재의 존재 이유를 모르는 반(反)국민적 발상"이라는 막말까지 했다.
한마디로 국회가 탄핵을 결정했으니 잔말 말고 따르라는 것이다. 헌재의 탄핵 심판을 마리 앙투아네트 재판처럼 '형식적' 절차로 전락시키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국민'만 내세우면 못할 것이 없다는 '완장 권력'의 법치 파괴다. 이것이 한국 야당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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