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불고기 포장마차나 공구가 북성로의 모든 것은 아니다. 100년 가까이 오래된 건축물들은 한때 '적산가옥'이라 불리었지만, 현재는 '근대건축물'로 불리며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비어 있던 건물들을 고쳐 들어와 사는 이들은 그곳에 나름의 이름을 붙이고,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에는 이야기가 충분하지 않은, 낯선 영역이 존재한다. 뒷골목 공업사의 기술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60, 70대, 기술 경력은 최소 30년이 넘는다. 일생을 무언가 '만드는 일'에 전념해 온 그들은 삶의 질곡만큼이나 끝없는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먹고살기 어려워 어릴 적 집을 떠나 맞기도 하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혔다. 눈대중이 곧 손의 감각으로 배였고, 뭐든 뜯어보고 만져가며 익힌 기술은 'FM'은 아니지만 어떤 상황에도 기지를 발휘할 수 있는 유연함을 지니고 있다. 한때 '북성로에 가면 탱크도 만든다'는 시대를 만들었던 기술자들은 여전히 북성로를 지키고 있다.
이들을 처음 불렀던 명칭은 '사장님'이었다. 저마다 작은 공업소를 하나씩 가진 그들은 크게 여유롭지는 않지만,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자기 결정권을 지닌 '사장님'들이었다. 이후 그들과의 만남을 거듭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그들을 해석할 또 다른 단어들이 생겨났다. 예를 들면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관찰하면서 제시한 인물상 '브리꼴레르'다. 보잘것없는 재료와 도구들로 자신에게 필요한 집이나 물건을 만들어내는 손재주꾼을 일컫는다. 북성로의 기술자들 역시 어디선가 버려지고 못 쓰게 된 물건들을 해체하고 작동 원리를 익히고 그것을 변주하는 과정을 통해 발동기, 자동차, 양수기 등 각종 물건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이들은 북성로를 '가면 뭐든 해결되는 곳'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요즘 세상이 필요로 하는 어떤 혁신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낯선 이들을 이해할 언어를 익히고, 그들을 해석할 언어를 찾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말하기 과정을 반복하면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일어난 일, 그 사실들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물음의 층위를 바꿔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는지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우리의 현실에 범람해 뭔가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면, 그 또한 혁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내기 위해' 지내온 북성로 기술자들의 과거를 더 나은 이야기로 만드는 것, 이는 해석학적 물음과 연결해서 사유하게 한다는 점에서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갈 수도 있었을 몇 가지 삶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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