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수능 이후 몇가지 단상

입력 2016-12-08 04:55:05

#1 2017학년도 수능 직후에 열린 대구 입시설명회에서 나눈 이야기 한 토막. 서울의 대형 입시업체 A소장에게 물었다. "이번 수능이 어렵다고 하지만 난이도 조절이 잘 된 것 아닙니까?"

그는 반색했다. "사람들이 불수능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옳지 않은 표현입니다. 변별력이 잘 나타난 것이지요. 대부분 영역에서 1등급 컷이 90점대 초반으로 형성된 것은 출제가 아주 이상적인 것입니다."

"그럼 내년 수능도 이런 출제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봅니까?" "최근 몇 년간 쉬운 수능이 이어지면서 잘못된 시그널을 주었지요. 그 배경에는 사교육 시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도 있었고요. 무조건 쉬운 수능이 능사가 아니지요. 이제 출제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능이 '실수 안 하기' 시험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만점자가 속출해 1문제 틀리고도 3등급으로 추락하는 경우가 있었다. 수능이 이런 학생을 재수의 길로 내몰았다. 1, 2문제 실수하더라도 회복할 수 없게 되어선 곤란하다. 그래서 수능이 실수와 실력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 유지엔 충분히 동의한다.

#2 재수종합학원의 B씨는 이렇게 말한다. 대구 학부모만큼 서울대 공대를 우습게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상위권 재수생은 무조건 '의치한'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서울대 공대, 자연대는 눈에 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는 현역들도 마찬가지다. 공부 좀 한다고 하면 진학 목표는 의대다. 교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학교당 많게는 50~60명, 못해도 10명은 의치한으로 수시 원서를 쓴다고 한다. 고교 2, 1학년으로 내려가면 진학 목표를 의대로 잡는 학생은 곱절로 더해 늘어난다. 이쯤 되면 꿈과 끼, 적성을 고려한 진학지도 활동은 무소용이다.

그렇다면 대구의 의대 진학 현실은 어떠한가? 정확한 집계 자료가 없다. 교육청조차 파악 못한다. 수치를 말 못하니 안 하는 것 같다. 고교도 정확한 의대 진학 실적을 내놓지 않는다. 베테랑 진학 교사의 말을 빌리면 보통 수성구 학교에서 수시로 의대 가는 숫자는 졸업생 포함 3명에서 10명 사이라고 한다. 0명인 학교도 수두룩하다.

상위권의 수시 카드가 무조건 의대로 쏠리는 것이 안타깝다. 올해 전국 의대 정원이 2천500명이고, 수능 과탐 선택자 26만 명으로 계산하면 0.96% 안에 들어야 한다. 여기에 막강한 재수생을 고려하면 현역은 전교 세 손가락 안에 꼽혀도 힘들 수 있다. 의대에 매몰되는 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3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인사 담당을 한 사람이 털어놨다. 그는 왜 대기업이 SKY 출신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회사는 기본적으로 성실한 사람을 좋아한다. 개개인의 능력, 창의성, 잠재력은 그다음 문제다. 개인 성실성을 판단할 때 명문대 출신이 확률적으로 더 성실하더라."

이 논리를 풀면 다음과 같다. SKY를 가기 위해서는 중'교교 시절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학생의 신분에서 가장 성실해야 할 것이 학업이다 보면 당시에 최선을 다한 것이 검증되었고, 대학에서 성실성을 보여주는 것은 학점이니 이를 보고 골라서 뽑으면 된다는 얘기다.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SKY를 가는 것은 아니지만, 명문대를 보는 사회적 평가가 이러함을 나무랄 수는 없다. 질풍노도의 시절 숱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학생의 본분'을 다한 보상이 아닐까?

살다 보면 겪는 고비마다 쉬어가고 돌아갈 수 없듯이, 공부를 위해선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그것이 행복한 삶이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 못하겠지만, 적어도 입시에서는 그렇다.

"돈도 실력이야, 너희 부모를 원망해"라며 기고만장하던 정유라 때문에, 최순실 믿고 설친 이들 때문에, 학생들이 좌절하고 거리로 나와서 공부를 놓을 순 없다.

아무리 말 타고 이대에 들어가 끄떡거려도 2년 안 가서 '중졸'이 되고, 줄줄이 잡혀와 '유니폼' 입은 채 카메라 세례를 받지 않는가. 이것이 세상사 사필귀정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