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흉터의 지리학

입력 2016-12-07 04:55:02

모든 것이 일시적이고, 모든 사람이 그저 지나치기만 하는 경유지로 쇠락해버린 경관을 지나가다 보면, 어딘가 의미 있는 장소를 향한 갈망을 느끼게 되곤 한다. 장소에 관한 이러한 감정은 '인간'이라는 종의 본질적인 특징 중 하나다. 이-푸 투안이 '토포필리아'라 말한 바와 같이, 인간에게 환경은 깊은 정과 사랑의 대상이자 기쁨과 확실성의 원천이다. 환경은 그것을 경험하는 인간들에게 세계관을 이루는 연결고리가 된다.

하지만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속도가 군림하게 된 세상에서는 '장소의 특별함에 대한 무관심'이 늘어난다. 과잉 이동의 시대에, 장소에 대한 사랑은 마치 구닥다리인 것으로, 심지어 반동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쉽다. 예전에 다녔던 레코드점, 책방 등은 인터넷 사이트와 대형문고에 의해 밀려나고, 그 시절의 기억은 머릿속에서만, 운이 좋으면 그 기억을 공유하는 다른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겨우 살아남는다. 어떤 곳들은 레코드나 책 등으로 어느 정도 기억해낸다지만, 아예 사라져버린 것들은 도통 떠올리기 쉽지 않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곳들처럼, 꿈에서 본 것처럼 흐릿해진다. 그 장소로부터 분리되는 상실감은 우리에게 일종의 상처를 준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곳이자 기억의 축적물인 장소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한 친구는 어릴 적 갑자기 가난해진 집안 사정으로 이곳저곳으로 자주 이사를 다니면서 힘들게 지내야 했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할 틈도 없이 이사를 반복하면서 일종의 의식을 치르게 됐다고 했다. 이사를 가기 전 살던 집 벽이나 바닥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그곳에서의 기억들을 빠짐없이 노트에 적어뒀다고.

하지만 어른이 되고, 기억을 더듬어 다시 찾아간 그 집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사라졌고, 대개 아파트로 바뀌어 있었다. 기억을 이을 단서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왜 자꾸만 오래된 것들에 눈이 머물고, 영상을 통해 그것들이 사라지지 않게 잡아두고 싶었는지 스스로 되묻는 과정에서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그렇게 도달한 곳은 그녀 자신의 기억 속이었다.

상처 한 번 안 난 어른이 없듯이, 이 도시도 그럴 것이다. 상처는 때론 흉터를 남기지만, 그 흉터는 오히려 어떤 상처가 회복된 증거가 된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여러 겹에 걸쳐 쓰인 이 도시는 우리 각자의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기억과 망각의 텍스트가 된다. 그래서 도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뭉쳐진 원고지들을 한 장씩 한 장씩 벗겨내며 읽고 해독하는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상처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생채기와 통증을 치유하고 아물게 하는 기술이 바로 '흉터의 지리학'이다. 앞서 이야기한 그 친구는 어릴 적 잃어버린 기억의 장소들에 대한 상실감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애도의 방법을 찾아냈다. 그녀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업에 몰두하는 것도 그 연장 선상에 있다. 자신과 같은 이들이 기억상실증에 빠지지 않는, 기록이 남는 도시를 만들고 싶다는 그녀는 앞으로 또 어떤 층위의 도시를 읽고 해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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