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촛불과 기다림

입력 2016-12-03 04:55:12

기독교에서는 성탄절에 앞서 4주간을 대림절(대강절)이라 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 훈련의 기간을 갖고 있다. 대림절을 통하여 엿보이는 기독교회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공동체임을 보여준다. 이 하나님의 기다림은 하나님이 가져올 완전한 선함, 완전한 정의(正義), 완전한 아름다움, 완전한 평화로움, 완전한 복락(福樂) 세계에 대한 기대이다. 이런 기대는 인간의 세계가 불완전하며 영속적이지 못하며, 지나가고 끝이 있는 유한함을 인식하는 데서 나오는 반대급부(反對給付)의 소망이다. 곧 하나님 나라의 도래(到來)를 꿈꾸는 것이다.

이 소망은 기독교인들만 가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불의와 탐욕으로 인한 기울어진 세상을 경험한 사람은 대부분 이런 소망을 갖게 될 것이다. 탐욕적인 경영을 하는 기업주, 권력의 맛을 본 후 사람을 안하무인격으로 대하는 오만한 정치인들, 이데올로기에 젖어 자기와 다른 것을 악으로 매도하는 삐뚤어진 운동가들, 친절과 봉사의 태도가 결여된 관료주의에 빠져 군림하려는 공직자들, 율법적 형식주의와 권위주의에 빠져 영성의 맛을 잃어버린 종교 지도자들, 자녀들을 대리 만족의 도구로 삼아 왜곡된 교육열에 집착하고 있는 부모들을 곁에서 보고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들은 온전한 세계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게 된다.

기다림에는 두 가지 태도가 있다. 소극적인 것과 적극적인 행위이다. 어느 것이 다른 것보다 우월하거나 옳다고 평가할 수 없다. 소극적인 것은 인내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것은 기다리지 않고 달려 나가는 것이다. 나가서 맞이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호소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종교적인 의식이다. 곧 기도와 찬송이다. 침묵 중에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드리는 것이 기도 행위이고, 소리 질러 환호하고 호소하는 것이 찬송 행위이다. 이 두 가지를 절묘하게 담아 표현하는 것이 촛불을 붙이는 것이다. 기독교회는 오래전부터 부활절에 촛불 예배를 드려왔다. 초에 불을 붙여 들고는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맞으러 나가는 행동이다. 촛불을 들고 나아가는 것은 사모함과 기다림, 그리고 희망의 찬송을 함께 담아내는 상징적 행위이다.

우리나라에 지금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몇 주 동안 계속 토요일마다 광화문을 비롯하여 전국 주요 도시의 광장과 심지어 섬 마을 넓은 마당까지 촛불을 들고 시민들이 광장(廣場) 촛불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국민들이 맡긴 권력이 이상한 사람들에 의하여 농단을 당했다는 분노를 표출하면서 바른 나라, 바르고 정의로운 사회를 세우려는 목마름으로 광장에 촛불을 들고 모이고 있다. 이런 기다림의 행위를 빨갱이들의 짓이라고 매도하는 자들도 있는 것 같다. 어린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광장으로 나와 함께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은 단순한 정치꾼들의 행위가 아니다. 단순한 운동권의 유혹에 넘어간 어리석은 짓이 아니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모두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다리는 그 나름의 소박한 종교의식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려면 끝까지 촛불로 이어가야 한다. 순수한 촛불이 폭력적 횃불로 바뀌지 않도록 시민들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무엇보다도 정권이 속히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가 되도록 잘못된 권력 행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이제 교회당마다 거리마다 성탄의 상징인 별과 종(鐘)을 매단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고 있다. 점등식을 마친 곳에서는 벌써 전구들이 아름답게 어두운 밤거리를 밝히고 있다. 점차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환한 미소를 머금고 얘기들 나누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림들이 거리를 채워갈 것이다. 그들의 행복한 미래를 그리며 그런 우리나라가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오늘도 촛불이 그런 목적으로 타오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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