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가 유방을 죽였더라면, '사면초가'는 없었을까…『세계사를 바꾼 담판의 역사』

입력 2016-12-03 04:55:12

세계사를 바꾼 담판의 역사/ 함규진 지음/ 휴먼앤북스 펴냄

'손자병법'에는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라고 적혀 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선이라는 얘기다. 싸우면 불가피하게 희생을 겪는다.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승리만 얻을 수 있다면, 이보다 효율적인 승리가 어디 있을까. 더구나 이기는 쪽은 물론 지는 쪽도 희생을 피할 수 있다. '평화'라는 단어가 발견되는 부분이다. 2천여 년 전 손자병법을 쓴 손무의 혜안에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인류에게 숙제로 남아있는 듯하다. 전쟁은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고, 그로 인한 희생도 어쩔 수 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손무가 던진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은 찾을 수 있다. 바로 '담판'(談判)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전쟁 대신 담판으로 해결하면 전쟁으로 인한 희생은 없거나 최소화할 수 있다. 담판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3천여 년 전 히타이트와 이집트가 맺은 카데시 협정은 기록으로 남겨진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이다.

452년 교황 레오 1세는 로마 입성을 눈앞에 둔 훈족 왕 아틸라를 직접 찾아가 담판에 나섰다. 레오 1세는 로마 공략에 빠져 있는 동안 본거지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아틸라가 판단하게끔 설득했다. 아틸라가 로마는 손에 얻지 못하고 돌아가지만 본거지에 가서 "로마가 내게 항복해왔다"고 자랑할 수 있을 정도의 대가도 약속했다. 또 레오 1세와 사절들은 열심히 머리를 조아리며 아틸라의 공치사에 장단을 맞췄다. 결국 아틸라는 레오 1세와 사절들에게 잔치까지 베풀며 "나는 양이나 소 떼를 쫓지, 사자(레오 1세를 지칭)나 늑대(로마의 상징)를 쫓지 않는다!"고 외치고 군대를 되돌렸다. 461년 레오 1세가 죽자 사람들은 교황의 시신을 그동안 로마 외곽에 묻어온 전통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베드로의 묘 곁에 묻었다. 사람들은 레오 1세를 로마의 평화를 수호한 군주로 칭송한 것이었을 게다.

책에는 2개의 술자리 담판 사례도 등장한다.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가 만난 '홍문의 회'(기원전 207년)와 송 태조 조광윤과 개국공신들이 가진 '배주석병권'(960년대)이다.

홍문의 회는 항우가 유방을 초대해 죽이려고 만든 술자리였다. 부하인 항장에게 칼춤을 시켜 유방을 죽이려 했지만, 유방의 책사 장량 덕에 목숨을 구한 적이 있는 항우의 숙부 항백이 칼춤의 상대로 나서 되려 유방을 보호했다. 결국 유방은 죽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항우에게 이 술자리는 미래의 라이벌 유방을 미리 없앨 수 있는 무력 담판의 장이었다. 그러나 결국 실패해 어정쩡한 담판이 되고 말았다. 덕분에 훗날 유방은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1천여 년 뒤 송 태조 조광윤은 업그레이드된 무력 담판의 장을 마련했다.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 즉 '술을 나누며 병권을 거두는' 술자리였다. 이 술자리에 초대된 사람들은 조광윤을 도운 공으로 막강한 실권을 나눠 가진 개국공신 장군들이었다. 참석자들의 취기가 한껏 올랐을 때 조광윤이 말했다. "그대들 덕에 절도사에서 천자가 됐으니, 기쁘기 한량없소. 그러나 그대들은 모르리다. 차라리 절도사 시절이 편안했다는 것을! 내가 일개 무장이었다가 황제가 되었으니, 또 언제 어떤 무장이 나 대신 황제가 될지 모르지 않소. 그 무장이 여러분 중에 나올 수도 있고 말이오." 기겁한 장군들은 바닥에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렸고, 어떤 장군은 조광윤의 발목을 잡고 울먹이기까지 했다. 결국 한 장군이 "내일 당장 사직서를 올리겠다"고 외치자 나머지 장군들도 덩달아 "어명을 받잡겠다"고 맹세를 했다. 어정쩡거리다가는 혼자 괘씸죄를 뒤집어쓸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취한 장군들의 머릿속에는 한나라의 개국공신 한신과 팽월을 무자비하게 제거한 유방이 조광윤의 얼굴에 오버랩됐을지도.

몇 시간 뒤 술에서 깬 장군들의 손에는 사직서가 쥐어져 있었고, 조광윤은 '어제 내가 술이 과해서 그만.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은 모두 무효'라는 어명을 내리는 대신 사직서를 그대로 '접수'했다. 이후 조광윤은 병권을 반납한 장군들에게 많은 토지와 저택을 하사하고 서로 혼사도 맺으며 왕권을 안정시켜 나갔다. 이 사례에서도 평화를 찾을 수 있다. 백성들은 다시 전란에 빠지지 않았고, 개국공신 장군들도 무참히 제거되지 않고 그 나름의 대가도 얻었으니까.

책에서는 현대사 속 2개의 주목할 만한 담판, 1980년대 중후반 미국의 레이건과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가진 회담과 2000년 김대중과 김정일이 만난 6'15 남북정상회담도 비교해본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회담은 모든 핵과 미사일을 폐기하는 원래 목표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냉전을 종식시켰고, 담판을 여러 차례 거듭하면 평화의 완성도도 높일 수 있다는 선례를 제시했다. 반면 남북정상회담은 2000년에 이어 2007년(노무현-김정일), 겨우 두 차례 이뤄지고 말았기에 그런 효과를 낼 수 없었다는 게 책의 분석이다.

남한과 북한은 지금처럼 대립만 할 것이 아니라 담판의 틀 속에서 부지런히 만나야 한다. 따라서 평화라는 상시의 일과 통일이라는 미래의 일을 모두 이뤄내야 하는 대한민국 지도자의 담판 능력은 출중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다 못해 칠흑 같다.

324쪽, 1만4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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