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 한 피델 카스트로는 철저한 사회주의자였다. 젊은 시절 "사회주의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고 다녔다. 1953년 당시 쿠바의 독재자이자 친미 정권인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붙잡혀 산티아고 법정에 섰을 때도 "나를 멸시해라. 나는 그것에 개의치 않는다. 역사가 나를 용서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1959년 혁명으로 집권 후 그는 평소 그리던 사회주의 정책을 실현해 나가기 시작했다. 전면적인 농지개혁과 산업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그리고 이를 국민들에게 공정하게 분배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적대 정책을 폈다. 모든 미국인 소유 기업과 은행을 국유화했다.
이런 카스트로가 미국의 눈에 고울 리 없었다. 경제 제재와 외교 단절을 선언했다. 1961년엔 미 CIA가 용병 연합군을 쿠바에 보내 카스트로 정권의 전복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수도 아바나에 근접도 못하고 쿠바군에 잡혔다. 카스트로는 이들의 목에 팻말을 달아 아바나 시내를 행진하게 하는 수모를 줬다. 쿠바 비밀정보국이 미 CIA가 카스트로의 시가에 독을 바르는 등 모두 638차례나 암살을 시도했다고 폭로했을 정도다.
카스트로의 사회주의는 전염성이 강했다. 대부분 남미 국가가 카스트로식 사회주의를 꿈꿨다.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의 반군 세력은 카스트로 영향력 아래 있기를 자처했다. 칠레와 볼리비아, 니카라과, 에콰도르 등에선 카스트로를 추종하는 대통령이 나왔다. 최근 유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 또한 카스트로식 사회주의 정책을 답습했다. 아직도 사회주의를 고집하고 있는 북한과도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 카스트로는 2006년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25일 숨질 때까지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사회주의자로 천수를 누린 그다. 하지만 그의 사회주의를 답습했던 국가들엔 재앙이었다. 한때 남미 최고의 부자나라로 손꼽혔던 아르헨티나는 그동안 두 차례나 디폴트를 선언했다. 세계 석유 매장량 수위를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는 경제난으로 세계인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카스트로가 형제국이라며 아끼던 북한이 아직도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사회주의 혁명은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국가는 부유해지지 않았다. 국민도 가난에 시달린다. 그것이 카스트로가 갈구한 사회주의의 한계다. 역사는 카스트로를 용서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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