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파산 시대 걱정없다…일하는 노인의 활기찬 현장

입력 2016-11-29 04:55:01

커피 한 잔, 택배 한 짐…서비스는 청춘! 젊은이에 김밥 한 줄, 어르신은 건강 한 줄!

카페나우 실버 바리스타인 최무용(오른쪽)
카페나우 실버 바리스타인 최무용(오른쪽)'김성자 씨가 커피를 내리고 있다.
팔순의 나이에도 매일 40여 개의 짐을 배달하고 있다는 변영록(왼쪽) 택배사업단장과 어르신들은 인생은 지금부터라고 환하게 웃었다.
팔순의 나이에도 매일 40여 개의 짐을 배달하고 있다는 변영록(왼쪽) 택배사업단장과 어르신들은 인생은 지금부터라고 환하게 웃었다.
"할머니 손맛표 김밥 먹으러 오세요." 마실김밥 할머니들이 자신들이 만든 음식을 들어 보이며 포즈를 취했다.

얼마 전 일본의 인구절벽 실태를 소개한 '노후파산'이라는 책이 화제가 됐었다.

이 책에 따르면 현재 일본의 65세 이상 노인 중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이혼한 후 자녀들과 따로 사는 '홀몸노인'이 600만 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3분의 1인 200만 명이 파산해 바닥의 삶을 산다고 한다. 높은 저축률을 자랑하는 일본에서조차도 고령층 빈곤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내년이면 고령사회에 진입하는 우리나라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우리 '홀몸노인' 비중은 전체 노인의 20%로, 일본(16%)보다 더 높다. 특히 노인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최고인 50%에 육박하고, 60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국민연금 수급자가 30%를 살짝 웃도는 정도라는 점에서 우리가 일본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 때문에 노인들도 연금만 가지고 살기에는 힘든 '노후파산' 시대가 왔다. 은퇴 후에도 10년 이상 소득이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도 지난 2013년부터 고용률 70% 정책 추진의 일환으로 고령층 일자리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매일신문은 노인일자리사업 등을 통해 일자리를 구해 열심히 일하는 어르신들의 활기찬 현장을 찾아가봤다. 어르신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굉장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생긴다고 했다.

#실버 바리스타 평균 연령 70세…메뉴 개발·커피 제조 직접 맡아

◆우리는 실버 바리스타, 커피 맛 보실래예∼

지난 23일 오전 북구청 1층 민원실 한쪽에 자리한 한 커피숍에 사람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대구 북구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카페나우'(cafe now)다. 이곳은 7명의 실버 바리스타들이 참여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장으로, 어르신들의 꿈의 공간이다.

최무용(69) 씨는 벌써 6년 경력의 바리스타다. 지난 2010년 대구도시철도 1호선 문양역에서 오픈한 북구시니어클럽 1호 커피점에서 처음 바리스타 일을 접한 뒤 올 8월 문을 연 이곳으로 이동했다. 그는 "퇴직하고 나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일 9시간씩 서서 일해야 하는 일이지만, 일하는 즐거움에 행복함만 더해요"라고 환하게 웃었다. 김성자(63) 씨도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뭔가를 배우고, 배운 것을 통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면서 "자식들도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기분 좋아한다"고 말했다.

메뉴 주문에서부터 커피 만들기, 메뉴 개발 등 카페의 모든 업무는 실버 바리스타들이 직접 맡는다. 직원들의 평균 연령은 70세 이상이다. 북구시니어클럽은 내달 문양역점과 북구청점에서 바리스타로 일할 어르신들을 모집할 예정이다. 만 60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바리스타 교육 경험 등 경력자를 우대한다. 문의 053)341-4321.

#어르신 69명 수성구서 배송 활동…건강한 신체·친절한 마음 갖춰야

◆어르신 택배, 신속'정확합니다∼

대구 수성구 수성3가동의 한 아파트 앞에 택배 차량이 도착하자 어르신 3명이 쏜살같이 달려와 부지런히 짐을 내렸다. 이들은 대구 수성시니어클럽 '아파트 택배 사업단' 어르신들. 수성시니어클럽은 60세 이상의 건강하고 택배사업 참여의 조건을 갖춘 어르신을 대상으로 택배사업을 2008년부터 하고 있다. 현재 69명의 어르신들이 수성구 지역 22곳의 대규모 아파트를 거점으로 택배 배송 일을 하고 있다.

변영록(81) 사업단장은 택배 일만 7년째로 지역에서도 유명하다. 그는 "택배 일이 힘만 있으면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건강한 신체에, 정확성이 담보된 꼼꼼한 성격, 친절한 마음씨,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아야 택배 일을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환(78) 씨는 "이 나이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데에 자부심이 생긴다. 건강에도 좋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즐겁다"면서 "요즘 같은 김장철이나, 명절 때에는 무거운 짐이 많아 힘이 들지만 물건을 받는 고객들이 '고맙다'면서 물 한 잔 주면 피로가 씻은 듯이 날아간다"고 했다.

물건 하나당 수당은 500~550원이다. 일의 숙련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하루 35~40개의 짐을 배달한다고 했다. 만 60세 이상 직업이 없는 사람은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문의 053)784-6080.

#한가락했다는 주방장들 지원…문 열자 대구 김밥 맛집 등극

◆할머니 손맛 김밥, 맛이 일품∼

중구 반월당역 메트로플라자 봉산육거리 방향 끄트머리에 가면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김밥집이 있다. 대구 중구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는 '마실김밥'. 이곳은 여성 노인의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자는 취지로 2011년 처음 문을 열었다. 초기 멤버들의 경력은 화려했다. 18년 경력의 호텔 주방장 출신부터 일식집 보조까지 다양한 할머니들이 모여 김밥집을 운영했단다. 2011년부터 이곳에서 일했다는 허옥행(67·여) 씨는 "처음에 마실김밥집 오픈한다고 함께 일할 사람 모집할 때는 정말 엄청났어. 왕년에 주방에서 일 좀 했다는 사람들이 다 모였거든"이라며 활짝 웃었다.

주방 경험이 화려한 할머니들의 가세로 인해 마실김밥은 단번에 입소문을 타고 맛집으로 이름을 올렸다. 얼마 전엔 방천시장 김광석거리에 2호점을 내는 등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허 씨는 "김밥집에서 일하고 난 뒤에 건강을 오히려 되찾았다. 하루하루 즐겁게 살기 때문"이라면서 "얼마 전엔 여기서 번 돈으로 홀몸노인 60여 명에게 점심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뿌듯해했다. 마실김밥은 대구 중구 인근의 병원, 학원, 회사, 관공서 및 지역 사회기관·시설 등 200여 곳과 수요처 대상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3·4호점 등 계속해서 일자리 창출에 나선다는 계획. 만 60세 이상 대구에 거주하는 어르신 중 일할 의욕이 있는 분은 누구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연중 수시 모집. 문의 053)422-19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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