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마마보이 대신 사나이

입력 2016-10-27 04:55:05

초등학교 때부터 다른 학생들에 비해 탁월한 성적표를 만들어내며 부모의 기대를 한 번도 저버리지 않았던 A씨.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보다 더 어렵다는 특목고에 들어갔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미국 대학에까지 진학한 그는 학부를 마친 뒤 석사는 물론 박사 학위까지 남들이 놀랄 만큼의 최단기간 내에 따냈다.

학위 논문 통과가 확실시된 어느 날. A씨는 기쁨에 넘치는 목소리를 담아 한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체력 좋은 미국인들도 힘들다는 박사 학위까지 따낸 아들이 너무나 대견스러운 엄마에게 박사님 아들이 수화기 너머로 건넨 첫마디. "엄마, 이제 나 뭐해야 돼?"

"엄마가 하라고 했거든요" "엄마가 뭐라고 하시거든요" "엄마가…엄마가…"라며 엄마를 벗어나지 못하는 요즘 일부 젊은 세대들을 풍자하는 우스갯소리다. 마마보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대구경북을 비롯한 대한민국 지방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서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고, 다른 생각은 할 수 없는 마마보이. 그것이 바로 지금의 지방이다.

무서운 엄마 노릇을 멈추지 않는 중앙정부는 곳간부터 움켜쥐고 있다. 국가 세원의 80%를 중앙정부가 가졌다. 지방은 20%만 세원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지방의 힘으로는 재원을 마련할 수 없다. 일만 생기면 엄마에게 달려가는 아이처럼 지방정부 공무원들은 규모가 조금만 큰 사업이면 중앙정부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

집안 살림이 이 모양이다 보니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많이 하는 것이 축제다. 지방이 축제를 많이 하는 것은 중앙정부가 곳간 열쇠를 움켜쥔 채 다른 것은 못하게 하면서 축제할 만큼의 돈 쓰기만 허용하는 탓이다.

축제하느라 돈을 펑펑 쓴다고 중앙은 지방을 툭하면 나무란다. 엄마한테 돈을 타 쓰는 마마보이들은 돈을 아낄 필요는 물론 모아둘 생각도 갖기 어렵다. 다 쓰고 엄마한테 떼쓰면 또 주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많은 국민들은 진도 인근 바다에서 침몰해간 세월호를 보면서 중앙정부의 일방통행식 대한민국 국가통치시스템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깨우쳤다. 아직 제대로 꽃도 피워보지 못한 고교생을 비롯해 수백 명에 이르는 국민의 생명이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빠져들었건만 통치 권력은 이를 지켜내지 못했다.

근대적 민주주의의 사상적 기초를 만든 17세기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 이래 통치권이란 국민이 통치자와의 사회적 계약을 통해 통치자에게 양도한 것으로 정의돼왔다. 이 쌍방계약을 통해 통치자의 지배, 국민의 복종이 이뤄지는 국가가 성립했다. 국민이 통치자에게 통치권을 양도하는 대신 국가는 국민의 안전보장 등을 책임지는 계약, 사회계약설(說)이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통치자와의 사회계약은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국민은 복종의 의무라는 사회적 계약을 이행해왔지만 대한민국의 통치권은 무능했고 결국 통치자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다.

능력도 모자라면서 대한민국 지방 구석구석을 모두 통제하고 간섭하는 중앙정부의 권력 독점 폐해가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낸다. 세월호 참사 때 해양수산부·교육부·해양경찰청 등이 각각 별도의 사고대책본부를 꾸리는 등 중앙정부 각 부처의 대응은 무능 그 자체였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중앙정부를 지휘하는 청와대로의 과도한 권력 집중은 '비선 실세'까지 기생하게 만들었고 국정이 특정인에 의해 농락당하는 참극이 만들어졌다.

개헌 논의가 나왔다. 헌법에 지방분권 국가임을 명확히 규정, 재원과 사람, 권한을 지방과 중앙이 나누는 국가 대개조의 기회가 왔다. 지방이 중앙정부의 마마보이가 아닌 사나이다움을 회복할 때가 된 것이다.

독일·스위스 등 우리가 선진적 발전모델로 삼고 있는 나라는 중앙정부를 최소화하고 지방에 권한을 부여했다. 사나이다운 지방을 동력 삼아 권력형 부패가 드문 부강한 나라가 됐다. 우리는 왜 못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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