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으뜸 의사] 정휘 포항 정한의원 원장

입력 2016-10-26 04:55:01

"사람 몸도 사회도 건강하려면 일침과 쓴 약이 필수"

정휘 원장: 1964년 포항 출생. 대구 영진고, 대구한의대 한의학과 졸업. 포항 정한의원 원장. 포항 예술문화연구소 이사장. 포항시 문화도시조성 준비위원. 포항시 문화재단설립 추진위원. 국토교통부 부패방지 위원. 전 포항 경실련 집행위원장. 전 경실련 중앙위원. 전 지방분권운동 포항본부 집행위원장
정휘 원장: 1964년 포항 출생. 대구 영진고, 대구한의대 한의학과 졸업. 포항 정한의원 원장. 포항 예술문화연구소 이사장. 포항시 문화도시조성 준비위원. 포항시 문화재단설립 추진위원. 국토교통부 부패방지 위원. 전 포항 경실련 집행위원장. 전 경실련 중앙위원. 전 지방분권운동 포항본부 집행위원장

수백 번 실패 끝 아토피치료제 개발

'법제 없이 유통되는 한약에 우려

어머니 불안장애로 심리치료 몰두

20년간 포항 시민운동 중추 역할

"사회적으로 좋게 미치면 인정받아"

병원은 한산했다. 정휘(52) 포항 정한의원 원장은 "맨날 논다. 환자가 없다"며 웃었다. 사실 그는 시민운동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90년 개원한 이후 포항경제정의실천연합에서 20년 이상 활동했고, 집행위원장도 3차례나 역임했다. 포항 예술문화연구소 이사장과 포항시 문화재단설립 추진위원, 포항시 문화도시조성 준비위원, 팔로어 수 1만7천 명의 '페이스북 포항' 회장 등 10여 개가 넘는 직함도 달고 있다.

그는 다양한 문제의 원인을 왜곡된 사회 구조와 정책 운영 시스템에서 찾는 습관이 있었다. 아토피 피부염 치료 얘기를 하다가 한약재의 유통 방식, 잘못된 약재 복용 행태로 넘어간 뒤 정부의 한의학 육성 정책과 약재 관리 실태에 대한 지적으로 넘어가는 식이다. 오랜 시민단체 경험이 낳은 일종의 '직업병'인 듯했다. 물론 그의 본업은 한의사다.

◆화병 앓던 어머니 보며 한의사의 길로

정 원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작은 병에 든 외용약을 꺼냈다. "이게 제가 개발한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입니다. 싸리나무 기름과 정제된 목초액 등 6가지 약초를 복합 처방한 건데요. 환자의 나이와 건강 상태, 비만 여부, 질환의 중증도 등에 따라 약재의 농도를 다르게 배합해서 처방합니다."

그도 처음에는 아토피 피부염을 가볍게 생각했다. "일반적인 약을 처방해 줬는데 별로 효과가 없더라고요. 고문서를 뒤져보니 피부질환에 유효한 약이 200~300가지가 나와요. 이 중에서 현대의학적으로 검증됐고, 중의학 실험 데이터에서 반복적으로 걸리는 약재로 6가지를 추렸어요. 정확한 배합 비율을 찾기까지 수백 번은 실패했죠." 그의 손등과 종아리에는 여기저기 흉터가 남아 있었다. 그가 직접 피부 염증을 만든 뒤 약을 발라 시험해 본 흔적이다.

정 원장은 무차별 유통되는 한약재의 현실에 대해 우려했다. 한의학에서 약재는 반드시 '법제'를 거쳐야 한다. 법제는 자연에서 채취한 원생 약의 독성을 없애고 치료 효능을 높이는 과정이다. "한약재는 써야 할 부위가 있어요. 껍질을 벗겨 써야 하는 가시오가피를 뿌리부터 잎까지 다 먹어요. 옻도 껍질을 벗기고 써야 하는데 통째로 솥에 넣고 끓여버려요. 그럼 심각한 간 독성이 올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국민의 건강을 지켜야 하는 정부가 책임져야 합니다."

옛 영일군청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성격이 '불칼' 같았다. 펄펄 끓는 아버지의 성격은 숨죽였던 어머니에겐 화병으로 옮겨붙었다. 어머니의 불안장애는 그가 심리치료에 몰두하게 된 계기가 됐다. 정서적인 고통은 약으로 다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하루에 해야 할 말이 8천 단어예요. 그런데 1천500~2천 단어도 못해요. 그렇게 쌓이면 결국 폭발하는 거예요. 몇 년이 지나면 간과 심장에 열이 차는 '울증'이 돼요." 그의 치료법은 간단하다. 가만히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다. "그렇게 다 쏟아내고 나면 울어요. 그러면 '상대방이 바뀌기를 바라면 그 운명을 상대방에게 걸어야 한다. 당신 운명은 당신에게 걸어라'고 해줍니다."

◆시민운동은 '좋게 미친 짓'

정 원장이 시민운동에 뛰어든 건 20여 년을 헤아린다. 정 원장은 '미치고 나서야 자유를 얻었다'는 칼릴 지브란의 '광인' 중 한 구절을 읊었다. "타인의 이해를 구하기 전에 내가 '광인'이 되면 됩니다. 사회적으로 좋게 미치면 돼요. 젊은 사람이 왜 시민단체 하느냐, 좌파냐, 출마하려고 그러느냐. 이런 소리를 수천 수만 번을 들었어요. 그런데 몇십 년을 하고 나니까 어느 누구도 그런 소리를 안 해요. 세상이 올바르게 가려면 일침이 필요하고 약이 필요합니다."

오랜 시민운동 중에 기억에 남는 일도 적잖다. 그는 대구와 포항을 잇는 무정차 시외버스가 고속도로를 경유하도록 바꾼 일을 먼저 꼽았다. "고속도로가 개통했는데 시외버스 사업자가 경상북도 보조금을 받으려고 경주를 거쳐서 국도로 다니는 거예요. 고속도로를 경유하면 운행 시간이 20분이나 줄어드는데 그걸 안 한 거죠." 3년 전에는 포스코건설이 베트남에서 조성한 비자금 300억원 문제를 국세청에 통보했다. "3천400억원을 들인 포스코건설 송도 사옥의 월세를 자본금 1억원짜리 회사가 받고 있었어요. 지난달 포스코건설이 2천500억원의 채무를 떠안고 회수했지만 1천억원이 사라지고 없어요."

협박도 많이 받았다. '밤길 조심하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래도 그는 "시민들이 비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판 없는 사회는 썩어버립니다.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할 수 있는 국민들의 의식도 필요합니다." 정 원장은 "우리 사회에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할 기구가 정말 없다"고 했다. 또 "민간에서 갈등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이해 당사자들이 모여 대안을 만들어 행정기관에 제시하면 풀릴 수 있다"고 했다.

"오늘부터라도 모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민단체나 봉사단체를 후원하고 참여하는 세상이 된다면 정치나 제도권에 의지하지 않아도 국민들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제가 꿈꾸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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