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시절 노자 '도덕경'에 깊은 감명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의 스승'기억나
東亞에 매료돼 한국도자기 처음 봐
미적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해 놀라
지난번 칼럼에서는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이 1982년이라고 했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동아시아 여행의 시작은 1982년 10월 히스로공항에서 처음 비행기에 올랐을 때가 아니었다. 나의 동아시아 여정은 일찌감치 학창 시절에 시작되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극동 지역이라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함을 처음 깨달은 것은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인 'The Travels of Marco Polo'를 읽었을 때였다. 이 책을 사립 상급 초등학교(8세에서 13세 남자 아이들이 다니는 영국의 사립 기숙학교) 도서관에서 발견해 읽었는데, 그때까지 알려져 있던 중국에 대해 묘사한 내용은 나에게 극동 지역에 대한 첫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도 그 학교 선생님을 통해서였다. 그 선생님은 영국이 징병제를 유지할 당시 유엔군으로 복무하셨는데 우리한테 그때 겪은 일들을, 예를 들면 DMZ 건너편에서 북한군이 총을 쏘던 일 같은 것을 이야기해 주셨다.
내 고향 리버풀에는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 조금 내려가면 차이나타운이 있었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우리 사 남매에게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차이나타운에 있는 식당에서 외식을 시켜 주시곤 했다. 비싸지는 않았지만 맛있고 이색적인 음식들이었다. 그곳에서 중국인 가족들이 서로 도와가며 식당을 운영하는 것을 보며 한국 문화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적 가족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동아시아 문화에 완전히 매료된 것은 대학교에 다닐 때였다. 북아일랜드 출신의 친구가 소개해 준 일본 문화가 그 시작이었다. 서구적이기만 했던 내 의식 속으로 일본 문화는 유도, 가라테, 합기도 같은 무술이나 현미와 신선한 채소, 미소 된장과 같은 음식들로 구성된 조지 오사와의 장수 식단의 모습을 하고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대학에서 영국 문학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나의 관심사는 제프리 초서,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점점 더 석가모니와 공자, 노자의 작품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학생 시절, 가장 감명 깊었던 책은 노자의 '도덕경'이다. 그때 내가 처음 접한 도덕경은 영어 번역문 사이사이에 소나무나 대나무 또는 설경을 담은 수묵화나 흑백 사진이 곁들여져 있었고, 더러 담백한 붓글씨가 그 위를 장식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점점 더 물질주의로 치닫고 있던 서양 세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동양의 미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 책의 내용 중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경구가 있다. '좋은 사람은 나쁜 사람의 스승이며 나쁜 사람은 좋은 사람의 책임이다.' 이는 나쁜 사람이라도 좋은 스승을 만나면 얼마든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얼마나 낙관적인 인간 본성에 대한 관점인가.
내 인생의 또 다른 책은 일본 선불교의 대표적인 시인인 료칸의 '가사 한 벌, 탁발 하나'(One Robe One Bowl)이다. 이 하이쿠는 료칸이 은둔생활을 하다가 집에 돌아와 도둑을 맞은 것을 알고 썼다고 한다. "도둑이 남겨 놓은 것이 하나 있구나. 저 창문에 달을 남겨 놓았네." 이 시는 물질세계에서 사소한 것들에 대한 욕심을 버린 사람이 취한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동아시아에 매료된 내가 자주 방문한 곳은 케임브리지에 있는 피츠윌리엄 박물관이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도자기를 보게 되었다. 학교 미술 수업에서 도자기를 만들어 보기도 했고 '영국 도예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버나드 리치에 대해 연구를 한 적도 있다.
처음으로 한국 도자기를 봤을 때 리치가 추구한 이상적인 미적 기준에 완벽히 부합하고 있어서 너무나 놀랐다. 이는 우연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그가 야나기 무네요시와 함께 1935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한국의 근대 도자기 작품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던 것이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그가 구입한 한국의 조선 백자인 '달항아리'는 현재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한국 전시 미술품 중 으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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