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비틀스: 에잇 데이즈 어 위크-투어링 이어즈

입력 2016-10-21 04:55:01

비틀스는 왜 그렇게 빨리 해산했을까

철학적 메시지가 담긴 음악을 만든 비틀스의 변신은 시대의 소산이었다.
철학적 메시지가 담긴 음악을 만든 비틀스의 변신은 시대의 소산이었다.

1960년대 전설적인 록밴드 '비틀스'.그들의 음악, 패션, 말투, 행동은 전세계 10대들을 사로잡았다. 아이돌 밴드에서 사회적

왜 그리 빨리 해산되었을까, 라이브 공연 실황 앨범이 왜 없을까, 진짜 오노 오코 때문이었을까, 가볍게 통통 튀는 사랑 노래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음악 세계로 변신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짧은 기간 활동했지만 음악사에 거대한 혁명을 일으킨 비틀스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의문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비틀스 마니아에게 큰 선물 상자 같은 영화이며, 청년 세대가 끌어간 전복의 문화사에 관심이 있는 지적인 관객에게 중요한 비밀을 풀어낼 열쇠가 될 것이다.

영국의 작은 도시 리버풀의 바에서 공연을 하다 1963년 미국에 발을 디딘 4명의 더벅머리 청년. 이 청년들은 그냥 록 밴드가 아니었다. 그들의 음악, 패션, 말투, 행동은 전 세계 10대들을 사로잡아 혼절하게 만들었다. 바로 '비틀스의 미국 침공'(British Invasion)이라는 대사건이다. 이 사건은 하나의 사회문화적 현상이 되었다. 2차 대전 후 베이비붐 세대였던 10대가 똘똘 뭉쳐 비틀스를 내세워 문화의 전면에 등장했고, 이는 1960년대가 어떤 사회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 영화는 그 전설적인 비틀스의 1963년에서부터 1966년까지의 세계 투어 콘서트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큐멘터리다.

비틀스 다큐멘터리를 만든 론 하워드 감독은 '아폴로 13'(1993)과 '다빈치 코드'(2006) 같은 품격 있는 블록버스터로 유명하지만, '뷰티풀 마인드'(2001)와 '신데렐라 맨'(2005)처럼 실존 인물을 영화화하는 데 관심이 많다. 1954년생인 하워드 감독은 자신이 10대 시절 겪었던 비틀스 현상을 치밀하게 구성한다.

4인의 멤버 중 생존해 있는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를 인터뷰하고, 사망한 존 레넌과 조지 해리슨이 생전에 여러 미디어에서 행했던 인터뷰 영상을 따온다. 비틀스 투어에 동행했던 젊은 저널리스트였던 래리 케인은 40년이 지난 후 그때 당시를 기억한다. 10대 소녀였던 배우 시거니 위버와 우피 골드버그는 간신히 콘서트 티켓을 손에 넣고 들떴던 과거를 회상한다. '하드 데이즈 나이트'(1964)와 '헬프!'(1965) 두 편의 영화를 비틀스와 함께 만들었던 리처드 레스터 감독도 증언한다. 그리고 영화감독, 역사학자, 작곡가, 저널리스트 등 어린 시절 '비틀마니아'였던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과거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하며, 비틀스가 행한 문화사적 의의와 영향력에 대해 진단한다. 놀라운 점은 SNS를 통해 수집한 2천 점이 넘는 팬들의 소장 사진과 영상이 담겼다는 점이다.

비틀스 콘서트만 보여주어도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비틀스가 왜 신드롬이 되었고, 그들은 왜 그렇게 빨리 흩어졌으며, 어떻게 귀여운 아이돌 밴드에서 진짜 뮤지션이 되었는지를 촘촘하게 엮는다.

처음 그들의 등장은 당돌했다. 리버풀 노동자 집안 출신 아들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낄낄대며 유머를 즐겼고, 어른들은 그런 모습에 혀를 끌끌 찼지만, 10대들은 당당하고 거리낌 없는 그들의 태도에 대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전후와 냉전의 1950년대를 지나 민권투쟁과 자유분방함이 휩쓴 1960년대 한복판에서 당돌하고 장난스러운 그들의 언행과 태도는 얌전하게 어른들 말에 순종하던 젊은이들의 가슴을 뻥 뚫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침없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전략하에 스튜디오에서 작곡을 하고, 앨범을 발표하고, 콘서트 투어를 하는 빽빽한 스케줄이 4년간 이어졌다. 1965년 뉴욕 세어 스타디움 공연은 5만 명이 넘는 관객 앞에서의 공연이었고, 이 공연은 록 밴드 스타디움 공연의 시초가 되었다. 이 공연은 역사적인 공연이었지만, 비틀스는 지쳐버렸다. 그들에게는 스튜디오에 들어가 음악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기쁨이었지만 쇼 비즈니스와 팬들은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패션과 가벼운 데이트 음악을 가지고 소녀 팬들에게 호소하는 아이돌 밴드로 남기에 그들 모두는 남다른 개성이 있었다. 1966년 8월 샌프란시스코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돌연 모든 공연을 중단했으며, 1967년에 완전히 다른 음악 세계를 보여준 실험적 앨범은 지금까지도 역대 명반 1위로 자주 지목된다.

돈과 인기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최고의 위치에서 그들은 멈춰 섰다. 흑백 인종의 자리를 구분하는 분리 정책을 그대로 가져간다면 공연을 하지 않겠다는 도발적인 발언을 하던 때처럼,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가는 데 거침이 없었다. 화려함을 벗어던지고 고뇌의 세계로 들어가 각자의 철학적 깊이를 노랫말로 끌어올렸다. 음악으로 변혁을 그리고 자유를 꿈꾸었던 비틀스의 거대한 울림은 지금도 깊은 감동을 준다.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크 뮤지션 밥 딜런의 영향은 영화에 직접 나오지 않지만, 아이돌 밴드에서 사회적 철학적 메시지가 담긴 음악을 만든 비틀스의 변신은 시대의 소산이었다. 언제나 멋진 시대와 음악이다. 비바 1960년대! 비바 비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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