땔감이나 빨래판으로 사용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경상북도와 안동시가 함께 만든 한국국학진흥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는 1960, 70년대 급속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숱한 사람들이 농촌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수백 년 종가'종택을 지켜오던 종손 등 젊은이들도 숙명처럼 여겨오던 문중과 가문의 유산 보존과 종가문화 지키기에 소홀해지면서 많은 문화유산들이 훼손과 멸실, 도난 등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지킴이가 떠나 빈집이 된 종가'고택 방 한 귀퉁이에 쌓여 있던 목판 등은 문화재 전문 절도범들의 표적이 돼 골동품으로 전락했으며, 화재 등으로 불타 없어져 버리는 신세가 됐다.
이처럼 무관심 속에 멸실될 위기에 처했던 유교책판들은 한국국학진흥원이 설립되고 '목판 100만 장 수집운동'을 비롯해 '문중유물 기탁운동'이 추진되면서 체계적으로 분류, 관리되며 빛을 보게 됐다. 한국국학진흥원 법인 설립 20여 년 만인 지난해 10월 10일 새벽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제12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회의'에서 국내에서 12번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이름을 올리는 쾌거를 이뤘다.
◆유교책판, 공론(公論) 통해 제작된 공동체 출판
유교책판은 영남 지역 305개 문중에서 기탁한 718종, 6만4천226장의 목판이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저작물을 인쇄'발간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문집류(실기'일고'유고 등 포함)가 583종(81.2%)으로 가장 많고, 성리서 52종, 족보류 32종, 예학서 19종, 역사'전기류 18종, 몽훈'수신서 7종, 지리 3종, 기타 4종 등 유학자들에 의해 생산된 기록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판들은 그동안 문중이나 서원 등 민간에서 보관해 왔으나, 1970년대 이후 급격한 농촌사회의 해체로 보관이 어려워지면서 2002년부터 한국국학진흥원 등이 '목판 10만 장 수집운동'을 전개하며 체계적으로 수집'보존해오고 있는 유산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유교책판이 가진 학술적 가치에 주목해 2009년부터 목판연구소를 설립, 가치를 규명해 왔다. 2013년 세계기록유산 등재 국내 후보로 선정되고, 지난해 1월과 4월 열린 등재소위원회에서 등재 권고를 받았었다.
유교책판은 공론(公論)을 통해 제작이 결정된 '공동체 출판'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에 완성된 책판은 개인이나 문중의 소유가 아니라, 지역사회 구성원 전체의 공동 소유라는 개념을 가지게 됐고, 보존'관리에도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독특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의의는 내용의 진정성. 718종 유교책판의 내용에는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연구했던 선현들의 기록이 담겨 있다. 후학들은 평생을 통해 그러한 삶을 추구했던 선현들을 현창하고, 그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그와 같은 인간상을 완성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유교책판을 제작했다.
한국국학진흥원 임노직 목판연구소장은 "조선 후기가 세계에서 유교적 이념이 가장 깊이 있게 적용됐던 시대로 불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유교책판이 있기 때문이다. 유교책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더욱 높은 정신적 가치를 유지했던 조선을 세계가 새롭게 주목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잠자고 있던 민간 기록물이 세계유산으로
안동시는 유교책판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관련해 "잠자고 있던 민간 기록물이 세계적인 문화자산이 됐다. 유교문화를 세계가 인정한 쾌거이면서 책판 수집'관리 등 10여 년이 넘는 노력의 결실"이라며 "안동시가 하회마을 세계유산 등재에 이어 세계유산의 도시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쾌거"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유교책판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일부 문중에서는 땔감이나 빨래판으로도 사용했고, 분실 등의 위기에 처하기까지 했다는 것.
그동안 유교책판은 종가나 종택 등 민간에서 보존'관리하다 보니 어떤 문중이 보관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기도 했다. 형편이 어려운 문중에서는 땔감으로 사용해 아궁이 속에서 불타 없어지기도 했고, 운반하기 적당한 크기에다 글자를 새길 때 생긴 '요철'(凹凸) 때문에 상당수 집안의 목판은 빨래판으로 쓰이기도 했다.
게다가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대부분 농촌지역에 있던 종가'종택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떠나면서 빈집이 됐고, 집안 대대로 물려 내려오던 유물들이 문화재 절도범들의 먹잇감이 되기도 했다. 텅 빈 종가 창고에 먼지만 덮인 채 쌓여 있던 책판들은 사실상 방치돼 오면서 세월이 지날수록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러나 한국국학진흥원이 설립되고 지난 2002년부터 '목판 10만 장 수집운동'이 시작되면서 체계적 관리'보존의 길이 열렸다. 문중에서 수탁한 목판들은 한국국학진흥원이 2005년 국비로 마련한 목판 전용 수장시설인 '장판각'에 보관돼 지금까지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수탁을 한 문중이 필요할 시에는 언제라도 목판을 장판각 밖으로 가져갈 수 있다.
이렇게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에는 전국에서 6만 장이 넘는 책판이 옮겨졌다. 그중 '퇴계선생문집'은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며, 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판각한 책판은 근대 출판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등 역사'학술적으로 귀중한 자료가 많다는 것이 국학진흥원의 설명이다.
◆경북의 선비정신과 결합한 세계적 브랜드화
'유교책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한국국학진흥원이 국학 연구기관으로 세계 속에 위상을 떨치게 됐으며, 경북도와 안동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새로운 관광'문화 보고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한국국학진흥원이 법인 설립 20년 만에 이룬 쾌거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고전번역원 등 국가 연구기관과 함께 3대 국학 연구기관으로 인정받게 됐다는 것이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당시 "유교책판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유교책판의 가치를 경북의 선비정신과 결합시켜 세계적 브랜드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한국국학진흥원을 국가기관으로 승격시키는 방안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용두 한국국학진흥원장은 "국학진흥원 사업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조들이 이뤄놓은 유교문화를 보존하는 것과 함께 후세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사업이다. 앞으로 이에 대한 다양한 사업들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안동시는 2010년 8월 하회마을의 세계유산 등재에 이어 경북도와 안동시가 함께 설립한 한국국학진흥원이 보관하고 있는 '유교책판'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3개 분야를 모두 등재시키는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특히, 한국국학진흥원 목판 10만 장 수집운동과 '유교책판' 세계기록유산 등재에는 하회 류씨 문중의 충효당'양진당을 비롯해 의성 김씨 학봉 종택, 안동 권씨 가일 문중 등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종가'종택들의 적극적인 유물 기탁과 관심이 큰 몫을 했다는 평가다.
손상락 안동시 세계문화유산담당은 "산업화가 되면서 종가'종택에 보관하던 목판 등이 도난과 분실 우려가 커졌다. 결국 국학진흥원에 수탁'관리하는 방안이 문중마다 논의됐다. 도난 우려가 오히려 목판 수집운동을 쉽게 하는 이유가 됐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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