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보물은 300권 넘는 환자 증례집
김일봉(63) 김일봉내과의원 원장은 '반전' 있는 남자다. 넉넉한 미소, 너털웃음과 달리 병원 건물 한쪽에 자리한 '보물 창고'에는 그의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이 숨겨져 있다. "보면 놀랄 텐데…"라며 그가 보물 창고의 문을 열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그의 '보물'인 300권 이상의 환자 증례집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그는 "교육적 가치가 있는 특징적인 환자의 사례를 모아놓았다"고 했다. 1995년부터 20여 년간 모은 사례들이다. 수기로 환자의 증상과 진단명 등을 정리했고, 초음파 사진을 일일이 출력해 붙였다. 김 원장이 각종 학술대회에서 강의를 하고, 초음파와 관련된 10여 권의 책을 낸 것도 다 '보물' 덕이다. "부끄럽게도 밖에서는 '초음파 대가'로 불리지만, 실은 '또라이'인 셈이죠. 하하." 그는 지금도 증례 정리를 꾸준히 하고 있다. 김 원장이 클래식 음악감상을 취미활동으로 삼은 이유를 이해할 것도 같았다. "귀로 음악을 듣는 것은 다른 일을 하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잖아요."
◆의사와 선생님의 꿈을 모두 이루다
어린 시절 김 원장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역사에 관심이 많은 문과생이었지만 총명한 아들이 의사가 되길 바랐던 부모님의 권유로 의과대에 진학했다. 의과대를 수석 졸업할 만큼 뛰어난 인재였던 그는 동기의 권유로 내과를 선택했다. "손재주가 없어서 바느질이나 칼질을 못하니 그 솜씨로는 외과로 가면 밥 굶어 죽기 딱 맞았죠."
내과 전문의를 따고 1988년 대구에서 개원한 그는 1995년부터 초음파 검진을 시작하면서부터 이름을 날렸다.
그 덕분에 선생님의 꿈도 이뤘다. 실력이 소문나면서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쇄도했다. 지난 2000년 초음파 관련 강의를 시작했고 지금은 매년 학술대회와 연수 등 100여 회 이상 초청을 받는다. 강의 일정을 적은 달력을 따로 지니고 있을 정도다.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은 의료기사가 촬영하고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진단을 하지만, 초음파 검진은 검사와 진단 모두 의사가 하기 때문에 어려운 기술이에요. 또 수련의 과정에서 초음파 검진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강의 수요가 많아요."
김 원장에게 가르침은 곧 배움이다. 의과대 시절 일본어를 배워 일본 초음파 전문 서적까지 독파한 그는 지금도 가르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한다. "다시 태어나면 꼭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내 사랑 초음파와 클래식
"왜 하필 초음파인가"라는 질문에 김 원장은 웃으며 답했다. "초음파 검진은 잘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의 차이가 확연해요. 잘하는 사람일수록 두각을 나타낼 수 있죠." 초음파 얘기만으로 1시간을 보낼 만큼 김 원장의 초음파 사랑은 대단했다. 그가 꼽은 초음파의 최고 장점은 안전성과 편리성이다. "초음파는 환자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고, 진료실에서 바로 검사, 진단을 해 결과를 알 수 있죠."
초음파는 곧 '사진 예술'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사진작가가 촬영기술과 순간 포착력으로 훌륭한 사진을 찍듯 초음파를 다루는 의사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는 좋은 초음파 화면의 네 가지 조건을 꼽았다. "일단 병변이 화면 중앙에 있어야 하고, 병변 위치를 정확히 나타낼 수 있도록 배경을 잘 잡아야 해요. 형태나 모양 등 병변의 특징이 잘 드러나야 하죠. 마지막으로 대조가 좋고 선명하게 나와야 합니다."
초음파 검진에 평생을 바친 그의 유일한 취미는 클래식 음악감상이다. 클래식에 관한 칼럼을 여러 번 기고할 정도로 관심과 조예가 깊다. 중학생 시절 음악선생님이 클래식 공연 표 판매를 시킨 게 출발점이었다. 워낙 인기가 없어 애써 팔고도 표가 남는 바람에 처음으로 간 공연. 그는 "이렇게 재미없는 것을 비싼 돈 내고 듣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표 판매는 매번 그의 몫이었고 남는 표가 아까워 거듭 찾아가게 된 공연장에서 클래식은 차츰차츰 그의 귀에 스며들었다. "지금은 대구악우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죠. 클래식과의 인연이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어요."
의욕적으로 대답하던 김 원장의 얼굴이 딱 한 번 굳은 건 '가족'을 언급했을 때였다. 곤란한 표정으로 얼굴까지 빨개진 그는 "제 얘기는 괜찮지만, 가족은 좀…."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잘 자라준 세 딸을 자랑하고 싶지만 딸들의 사생활을 지켜주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그의 진료실 책장 위에는 딸들로부터 받은 편지가 고이 붙어 있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