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에너지 흡수 뛰어난 한옥, 지진에 흔들려도 잘 안 무너져
한옥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은 지난달 경주 지진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옥에 피해가 많았다는데 과연 한옥에 사는 것이 안전할지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한옥 모델을 대규모로 보급하는 등 한옥 산업 메카를 꿈꾸고 있는 경상북도는 이 부분에 대해 "지나친 걱정"이라는 답을 내놓고 있다. 목조건물 자체의 안전성이 콘크리트 건물보다 돋보이는 데다 쇠로 강제 접합된 기존 철근 콘크리트 건물과 달리 한옥은 끼워 맞춤 구조로 되어 있는 만큼 다른 어떤 건물보다도 뛰어난 유연성을 확보, 내진 성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경북도는 전문가들과 함께 향후 다양한 소재 연구를 통해 기와 파손 최소화 등 한옥의 지진 안정성을 크게 높이는 대책을 내놓을 방침이다.
◆9'12 강진, 한옥 피해는?
경북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한옥을 갖고 있는 광역자치단체로 추정된다. 현재 경북도는 도내 한옥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고 있으며 2018년까지 끝낼 예정이다.
일단 2013년 기준으로 도내 전체 목조건축물 19만4천411동 가운데 46.2%인 8만9천818동이 한옥인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치와 실제 조사치는 대체로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북도 내에서는 지난해까지 6개 시군(경주'안동'김천'영주'고령'성주)에서 전수조사가 끝났는데 6개 시'군의 사전 추정치 3만3천435동과 실제 한옥 판정치(3만2천85동)가 거의 맞아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조사치를 기준으로 할 때 경주시 내 한옥은 모두 1만2천284동이었다. 목조건축물의 54.7%였을 정도로 한옥이 많았다. 외동읍이 1천280동으로 가장 한옥이 많은 곳으로 나타났고 ▷사정동 378동 ▷황오동 226동 ▷황남동 224동 ▷율동 224동 ▷양북면 913동 ▷강동면 895동 ▷건천읍 891동 등이었다. 전수조사에서 목조건물을 한옥으로 볼 때 판정 기준점으로 삼은 것은 주요 구조가 기둥'보 및 한식 지붕틀로 된 목구조로서 우리나라 전통양식이 반영된 건축물 및 그 부속 건축물이었다.
경북도가 경주의 한옥 전수조사치를 바탕으로 이번 9'12 지진 때의 한옥 피해를 집계한 결과, 총 피해 주택은 5천48동(포항 52동, 경주 4천996동)이었고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난 한옥은 경주시 내 1천202동이었다.
전체 피해 주택 숫자가 4천996동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전체의 24%인 1천202동이 한옥으로 판단됐다.
경북도 관계자는 "한옥에만 지진 피해가 집중됐다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전체 피해 주택의 24%만 한옥이었다"고 설명했다.
◆한옥, 지진에 견디는 힘은?
경북도는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등 다양한 학술 자료를 증거로 제시하며 "한옥은 진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구조가 가구식 구조이기 때문에 진동에너지를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요 구조 부재인 기둥과 창방 및 도리가 강접합되지 않고 서로 끼워 맞춤 형태로 되어 있어 공간에 틈이 있는 것이 한옥 구조의 특성이다. 조적조(돌, 벽돌, 콘크리트 블록 등으로 쌓아 올려서 벽을 만드는 건축 구조)에 비해 결부된 부분이 허술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지진에너지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는 힘을 높인다는 것이다.
못이나 다른 기구를 써서 강하게 결속시킨 방식이 아니라 맞춤 등의 결구 방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심하게 흔들리더라도 오히려 빠지는 확률이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대한건축학회 논문 등에 실린 실제 지진을 가정한 진동 시뮬레이션 자료에 따르면 '한옥 등 전통 목구조물은 접합부를 구속하기 위한 목적으로 철물을 사용하지 않으며 오로지 구속력과 재료의 마찰계수에 의해서 유발되는 마찰력으로 유지된다. 결국 접합부에서 큰 회전각을 허용하고 비교적 높은 에너지 흡수 능력을 갖고 있으므로 진동에너지 흡수 능력이 상당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강진 피해 현장에서 증명
경북도 관계자는 "이번 경주 강진 피해 현장 조사를 나가본 결과, 강진에서 비롯된 피해는 대부분이 지붕 기와의 교란 현상이나 탈락이었다. 대부분 기와 하부 흙(수키와 하부 홍두깨흙, 암키와 하부 알매흙)이 오랜 세월 빗물 등에 의해 퇴락돼 기와가 마찰력 없이 단순히 얹어 놓은 상태여서 강진에 기와 피해가 집중됐다"고 했다.
경북도는 전통 기와 잇기의 경우, 많은 흙이 들어가는 만큼 무게중심이 높아 지진에 취약한 점이 있는데 기와 하부에 흙을 사용하지 않고 시공할 수 있는 건식 기와가 현재 개발돼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향후 건식 기와 사용을 늘리면 한옥의 내진 성능을 키우는 데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벽체에 가새 등을 보완하고 기초와 기둥 사이에 앵커 볼트 등을 사용한다면 내진 성능이 더욱 향상될 것이라고 경북도는 내다봤다.
경북도 건축디자인과 이상욱 사무관은 "향후 한옥의 내진 성능 향상 연구에 더욱 매진한다면 지진 대비책이 훨씬 더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경북도가 확보한 학술 자료만 해도 우리 고유의 한옥에 대한 내진 성능을 검증한 것이 많아 앞으로 조금만 보완한다면 한옥이 경북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미래 주거 양식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한옥, 나무라서 좋다
지진이 나면 나무로 만든 건물이 훨씬 쉽게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실험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결과는 반대다.
즉 지진이 일어나면 땅이 흔들리는데, 이때 건축물은 자체 무게에 비례하는 힘을 받는다. 무거운 건물은 많이 흔들리고 가벼운 건물은 적게 흔들린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벼운 나무로 지은 건물의 피해가 적다.
실제로 2009년 일본에서는 6층짜리 나무 아파트로 지진 실험을 했다. 거대한 진동판 위에 아파트를 올려놓고, 실제 지진이 난 것처럼 40초 동안 마구 흔들었다. 이때의 충격은 규모 6.5∼7.3의 지진과 같은 세기였다. 실험 결과, 나무 아파트는 벽에 살짝 금이 간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나무의 단점도 있다. 인공 재료와 달리 강도가 약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엔 나무의 이런 약점이 상당 부분 극복됐다. 수분 함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공기를 빼서 압축하면 강도가 약 25% 높아지는 연구가 이뤄져 강한 나무가 만들어지고 있다. 공기를 뺀 건축 재료용 나무는 일반 나무와 달리 불도 잘 붙지 않는다. 최경철 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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