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 '한국식물생태보감' 펴낸 김종원 계명대 생물학과 교수

입력 2016-10-15 04:55:02

식물명이 며느리밑씻개? "일제식 아직도 베껴쓰기 황당"

황당한 이름으로 유명한
대구 지역에만 서식하는 애기자운.
황당한 이름으로 유명한 '며느리밑씻개'(위)와 '며느리배꼽'
대구 지역에만 서식하는 애기자운.

김종원 계명대 생물학과(식물사회학 전공) 교수는 '식물사회학'을 '관상쟁이 학문'이라고 칭한다. 식물사회학자인 김 교수는 식물의 형상을 통해 해당 식물의 족적, 현재의 삶, 다가올 삶을 해석한다. 또한 그 식물이 왜 그 자리에 와 있는지, 스스로 왔는지 끌려왔는지, 앞으로 잘 살아갈 것인지, 행복한지 불행한지,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지 알아낸다. 식물은 표정을 짓지 못한다. 말도 못한다. 그런 까닭에 식물에 대해 알려면 오랜 시간 묵묵히 바라보아야 하고,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식물과 사람 사이의 통역자

김 교수는 자신을 '식물과 사람 사이의 통역자'로 규정한다. 식물의 형상을 통해 파악한 내용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그가 펴낸 책 은 '식물 언어를 사람 언어'로 번역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매년 1권씩 총 10권의 시리즈를 펴낼 계획이다. 1, 2권을 시작으로 3권 '바닷가에 사는 식물', 4권 '암벽'바위에 사는 식물', 5권 '습한 땅에 사는 식물', 6권 '개척 땅에 사는 식물', 7권 '낙엽활엽수림에 사는 식물', 8권 '상록활엽수림에 사는 식물', 9권 '야고산'고산지대에 사는 식물', 10권 '분포 특이 식물'까지 계획하고 있다. '책의 범위'는 사람 사는 곳을 중심으로 점점 먼 곳으로 나아간다.

◇식물도 살고 싶은 곳이 있다

김 교수가 '식물 분류'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해당 식물이 자리 잡은 터에 주목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식물도 살고 싶은 데가 있고, 살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또한 주변 생물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식물과 식물, 식물과 동물, 식물과 인류 사이에 관계가 맺어지고, 문화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서식지, 서식처, 삶터, 생명성을 외면하고 '식물 분류'만으로 구분하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을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고 결론을 도출하려는 것입니다. 식물이나 동물을 생명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필요한 수단으로 재단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온전한 이해가 될 리 없습니다."

김 교수는 야생의 생명을 그들의 삶에 근거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야생의 생명들에게는 물론이고 인류에게도 이롭다는 것이다. 그는 "야생의 생명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않는 태도, 필요에 따라 재단하는 태도는 결국 자연의 소리에 귀를 닫는 것이고, 이는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감성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10권의 책을 구상하면서 '식물이 자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분류한 까닭이다.

◇"가짜가 진짜를 밀어내고 번져"

시중에는 식물도감이 넘친다. 김 교수는 볼 때마다 '허전하고 안타깝다'고 말한다.

"1970년대 흑백 도감에서 컬러 도감으로 발전했을 뿐 생명성이 없다. 생명에 대한 사랑도 없다. 식물이 활자 속에 갇힌 과학의 대상이 됐다. 게다가 학자들이 공부를 게을리하는 탓에, 베끼고 또 베끼기를 거듭하는 바람에 틀린 내역, 틀린 이름이 그대로 이어진다. 사실이 아닌 내용이 수두룩하다."

김 교수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고문헌을 일일이 찾아 대조하고, 이상한 이름이 불쑥 튀어나오는 과정과 그 이름이 일반화되는 과정도 추적했다. 라틴어'그리스어 사전부터 한자'금석(金石) 자전까지, 동의보감은 물론이고 일제가 편찬한 조선식물명휘까지 샅샅이 훑었다.

"'며느리배꼽'이라고 불리는 식물도 있고, '며느리밑씻개'라는 식물도 있습니다. '며느리밑씻개'는 줄기에 예리한 갈고리형 가시가 거꾸로 나 있습니다. 이것으로 미운 며느리의 궁둥이를 닦거나 문지르게 했다는 옛이야기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들 합니다."

김 교수는 "이처럼 비열하고, 비이성적인 이름이 우리나라 문화에서 유래했다고들 떠들어대니 참담하다"고 말한다.

실상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며느리밑씻개'로 통하는 식물의 일본 이름인 '마마꼬노시시리누구이'는 '계모에게 학대받는 아들의 궁둥이 닦기' 혹은 '의붓자식 학대하기' 정도로 번역된다.

일제강점기 학자들이 이 말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계모와 자식 관계'를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로 멋대로 옮기고 '며느리밑씻개'로 이름 지어 버린 것이다. '며느리배꼽'이란 한글명도 이때 등장했다. 1937년의 일이다.

김 교수는 "며느리가 어째서 학대의 대상이냐. 생명을 잉태하고 보살피는 지엄한 어머니다"며 "며느리배꼽의 원래 이름은 '사광이풀'이었다. 이것을 닮은 며느리밑씻개는 '사광이아재비'라고 불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예는 한둘이 아니다. '오리'(五里)마다 심었다고 해서 '오리나무'라고 전해오는 '오리나무'는 실상 오리(물새)가 살 수 있는 터에서 자란다고 해서 '오리나무'가 됐다. '환삼덩굴'로 알려진 식물의 이름은 '한삼덩굴'이다.

◇ 1, 2권

2013년 펴낸 (자연과 생태 펴냄)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식물 382종을 선별하고, 그와 비교 대상까지 총 760종을 소개하고 있다. 고문헌을 추적해 우리 식물이 갖게 된 이름의 유래를 밝혔으며, 잘못 쓰이는 식물 이름을 바로잡으려 애썼다. 형태와 생태, 식물사회에 대한 개념도 정리하고 있다.

올해 펴낸 (자연과 생태 펴냄)은 풀밭에 사는 식물 208종을 선별하고 관련 식물까지 모두 501종을 소개하고 있다. 풀밭 식물에 얽힌 역사와 문화사도 풍성하게 풀어냈다.

◇지은이 김종원 교수는…

경북 영양 출생. 경북대학교 생물학과.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이학박사) (현)계명대학교 식물사회학(생태학), 보전생물학, 생태사회학 전공 교수.

식물사회의 속과 겉을 들여다본다. 식물사회 속에 깊숙이 녹아 있는 식물과 인간과의 오랜 관계를 찾아 나선다. 지은 책으로 1, 2권을 비롯해 등이 있다.

8년 전부터 무료 시민공개강좌 '참나무처럼'을 열어 식물을 통해 우리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꾸준히 전하고 있다. 노거수, 동구나무, 마을 숲, 풀밭, 나물 등 온갖 식물을 통해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사람살이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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